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의 서민금융 활성화 노력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듯하다. 차주(借主)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초래될 수 있고, 서민대출이 부실화할 경우에는 은행 경영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논리적으로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와 내수 둔화, 경제 양극화 심화로 인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서민들의 경제현실을 제대로 감안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서민금융 활성화는 글로벌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슈로서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과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 국제적인 추세와도 맥을 같이하는 사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권 내에서 서민이 차지하는 대출비중을 감안할 때 서민금융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도 직결된다. 서민경제가 부실화되면 금융사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나 재정 건전성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계층이 확대 재생산되는 소위 ‘소외적 성장’ 및 ‘소외적 금융’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층이 500만명이며, 월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계형 자영업자는 170만명, 다중채무자는 최소 130만명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의 은행대출 이용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2008년 말 14.5%→2012년 6월 말 11.4%)한 반면, 같은 기간 비은행대출 비중은 상승(43.2%→47.3%)했다. 제도권 금융사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금리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빚을 못 갚는 채무불이행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숫자도 올해 들어 55% 이상 급증하고 있다. 또한 저축은행 및 대부업체로부터 고금리 학자금대출을 받은 대학생이 12만여명, 대출금액은 4000억원에 달하고 있어 젊은 층으로까지 금융채무 불이행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 제일 우려되는 부분은 이와 같은 취약계층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7등급 이하 취약계층에 대한 은행대출 규모는 약 50조원(은행 총 가계대출의 11.4%), 비은행대출 규모는 88조원(비은행 총 가계대출의 34.3%)에 달한다. 이런 대출이 적절한 대책없이 급격히 부실화될 경우 해당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 내수경기 둔화, 실업증가 등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서민경제 문제를 단순히 금융의 일반적인 논리만 갖고 접근하기보다는 우리 금융시스템 및 거시경제 전반과 연계해 좀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와 같은 서민전용 대출 확대나 10%대 은행 대출상품 개발, 프리워크아웃 활성화 등 서민금융 지원대책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금융당국 차원의 선제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운용면에서 신중을 기해야 되겠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라는 당초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아야 실효성을 기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대출을 급격히 줄이면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소비둔화 등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정규모의 대출공급과 함께 재정·금리정책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가계부채 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래리 서머스 전 장관의 제언처럼 효율적인 정책조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의 주거비·사교육비 부담 완화 등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함으로써 소위 ‘포용적 동반성장(inclusive growth)’을 지향해 나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서민금융 지원 활성화는 취약계층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응급조치, 즉 ‘금융포용’의 일환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권혁세 < 금융감독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