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을 한발 앞선 자금 조달로 돌파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금융회사가 아닌 국내 일반기업 중 처음으로 영구채권을 발행한 것은 재무 혁신이자 새로운 도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 발행식에서다.

박 회장은 “현재 경영 상황은 보수적 혹은 혁신적이라고 이분법적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 만큼 2차원적이지 않다”며 “세계적 저성장 시대에 맞는 내실 경영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만간 이런 기조에 맞도록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의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인프라코어는 KDB산업은행, JP모건, 씨티은행을 주간사로 5억달러(약 55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당초 논의됐던 목표이율 연 3.5%보다 낮은 연 3.328%에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수요예측 결과 발행 규모의 7배에 달하는 주문이 몰려 금리 조건이 좋아졌다. 이 채권은 만기가 30년이지만 두산인프라코어가 계속 연장할 수 있어 사실상 영구채권으로 볼 수 있다.

다만 5년 안에 원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연 5%의 금리가 추가되고 7년이 지나면 다시 연 2%의 가산금리가 더해지는 스텝업(step up) 조항이 들어있다.

박 회장은 “영구채를 발행한 것은 내실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채권 발행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재무 구조는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2007년 미국의 건설장비 업체 밥캣(현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서 높은 금리로 빌린 채무를 상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377.5%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부채비율은 310.3%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을 장기간 압박했던 ‘밥캣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 관계자는 “급한 불은 지난해 이미 껐고, 지금은 잔불을 끄는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내부에서는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을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등 인프라 중심으로 바꿔놓은 박 회장이 재무구조 개선까지 마무리짓는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박 회장은 밥캣의 경영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밥캣은 2010년 3분기부터 흑자전환했으며 올해는 매출이 4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회장은 “건설 사업은 ‘도시화’와 ‘도시의 선진화’ 수준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며 “아직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그리 좋지 않지만 밥캣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경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박 회장은 “중국 경기 전망은 전문가들조차 엇갈리고 있다”며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두산인프라코어가 좀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구채 발행식을 주관한 KDB금융그룹의 강만수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개척자 정신으로 변화를 이끌어온 박용만 회장이 영구채 발행을 성사시켰다”며 “두산이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영구채권

Perpetual Bond.만기가 없어 투자자에게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계속 지급하는 채권.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행한 채권은 30년 만기 때 원금상환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 사실상의 영구채로 간주된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