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파주 북소리 2012’ 축제에 다녀왔다. 여러 전시가 있었는데 그중 주제관인 ‘한글 나들이 569’를 한글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봤다.

569는 한글이 창제된 지 올해가 569년이라는 의미라서 붙은 이름이었다. 전시는 한글의 발자취를 따라 버선본, 부적, 편지글 등 서민들의 한글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맞춤법 등이 현재와 달라 읽기가 어려웠지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현재를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봤다. 먼저 요즘의 영어표현 남발을 들 수 있다. 최근 인기가 있던 연속극에서 ‘시월드’라고 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시집 식구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시는 한자요, 월드는 영어인데 어떻게 이런 말을 쓸 수 있을까. 아예 영어 단어를 한글처럼 쓰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리얼(real), 힐링(healing) 등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핫(hot)한 기분’ ‘기분이 업(up)되다’ 등 영어와 한글을 붙여 사용하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공공기관에서는 한 술 더 뜬다. 공식 보고서에도 영어를 너무 많이 쓴다. 모 부처의 15쪽짜리 보고서에 비전, 패러다임, 시스템, 플랫폼, 인센티브, 미스매치, 리노베이션 등의 단어가 곳곳에서 사용됐다. 분당에 있는 모 부처소속의 ‘잡 월드’는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체험하는 기관인데, 그냥 한글로 ‘직업체험관’이라 하면 안 되었을까. 관련 법에도 ‘잡 월드’라고 규정돼 있다니 할 말은 없지만 왠지 아쉽다. 하우스푸어, 리니언시, 워킹맘지원센터, 마리나항만 등을 거리낌 없이 법과 정부에서 쓰고 있으니 세종대왕님도 못 알아보시고 놀라실 것이다.

거리 간판을 보자. 외국어가 범람하고 있다. 은행, 회사 이름, 공사 이름도 온통 영자표기다.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에 넘쳐나는데 온통 외국어 간판이라 한국에 온 것 같지 않다고 한단다.

맞춤법도 문제다. 한글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 어법에 맞게 사용하려는 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한글 관련 국립기관이나 단체의 역할도 아쉽다. 최근에 흩어졌던 한국어 학술단체 67개가 뭉쳐 10월에 어문단체연합회를 발족시킨다고 하니 기대가 자못 크다. 조선어학회의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한글의 문제점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모국어를 잘해야 외국어를 잘한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부터 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한글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정책 당국의 획기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한글은 위대한 우리 글이자 대한민국 그 자체다. 한글날은 국경일이지만 공휴일로 지정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한글축제가 열리는 날이어야 한다.

유네스코는 매년 전 세계의 문맹퇴치 공헌자에게 세종대왕상을 주고 있고,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은 43개국에 90개가 있다. 이런 한글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을까.

박재영 <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pjy5454@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