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의 부상과 중동기업들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로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패권 구도가 변화로 출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수요 침체가 지속되고 제품 가격도 떨어지면서 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한국의 수출 품목 중 석유제품이 선박,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가에 따른 변동성이 커지며 2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큰 폭의 영업적자를 냈다. 석유화학업계도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수요 감소와 제품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으로 인한 세계 에너지 지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특화제품 비중 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 정유업계는 지난 20년간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올려왔다. 꾸준한 설비 투자와 정제 능력 향상으로 국내 소비를 넘어 수출 기여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내수산업에서 경기연동형 수출산업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변동성이 높은 국제 유가가 정유사의 매출과 수익성, 운전자본과 재무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이다. 셰일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도 정유업계를 긴장하게 하고 있다.

당분간은 석유의 에너지원 1위 자리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셰일가스를 포함한 가스 비중이 2010년 21%에서 2023년 25%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석유는 32%에서 27%로 떨어지지만 여전히 선두권을 지킬 것으로 내다봤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의 상용화가 석유 수요의 중요 변수가 되겠지만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도 한동안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출이 늘면서 수익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국내 정제마진보다 변동성이 큰 국제 정제마진에 영향받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올 2분기에는 원유 구매 시점 이후 유가가 하락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제품 판매가격이 떨어져 국내 정유사들이 모두 영업적자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경기 부진으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 둔화로 국제 정제마진이 좋지 않은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고도화 시설을 확충하고 윤활유 부문을 강화하며 석유화학사업 등 비정유 사업을 분리,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석유화학업계도 제품 가격 하락으로 합성수지, 합성섬유 등 범용 제품의 수익성이 악화돼 고전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중동 지역 석유화학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로 설비를 늘리면서 점차 범용제품 생산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 국내 대형 석유화학기업들은 전년 영업이익 대비 반토막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석유화학기업들은 이 같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후발기업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특화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태양광모듈 등에 사용되는 고함량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로 차별화에 나섰다.

EVA는 태양전지, 전선, 접착제 등에 다용도로 사용되는 석유화학 제품으로 투명성과 접착력, 내구성이 뛰어나 기존 합성수지를 대체할 신소재로 꼽히고 있다. 고함량 EVA는 대규모 투자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범용 제품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100% 이상 차이가 날 만큼 부가가치가 월등히 높다.

금호석유화학은 친환경 타이어 핵심소재 ‘솔루션 스타이렌 부타디엔 고무(SSBR)’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LG화학은 SSBR뿐 아니라 고흡수성 수지, 섬유, 도료, 접착제, 충격보강재 등 다양한 제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아크릴레이트로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범용제품은 일본이 특화제품에 집중하면서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왔고 이젠 중국의 생산이 늘고 있다”며 “국내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특화제품 비중을 늘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중국에 의존하던 시장을 인도와 브라질 등 다른 신흥시장과 미국, 유럽 등 다양한 선진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생산설비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합작이나 투자를 통해 넓혀나간다는 전략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