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주택이 뜬다] 레고처럼 지어 별장처럼 쓰고 영화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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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모두 갖춘 '강소주택'…에너지 사용량은 '제로'
일주일이나 하루씩 나눠 여러 사람이 시간단위 사용도
일주일이나 하루씩 나눠 여러 사람이 시간단위 사용도
50대 A씨의 집은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이른바 ‘장수명 주택’이다. 평소 이 동네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하던 그는 장수명 주택 분양공고가 나오자 주저없이 청약했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생애주기에 따라 내부구조를 내 마음대로 고쳐쓸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출가하면 출입문을 별도로 하나 더 내 임대를 줄 수 있다.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는 것도 매력적이다. 태양열, 지열 등을 통해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A씨는 경기 양평에 주말주택 한 채도 보유하고 있다. 건설 원가와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매뉴팩처드(manufactured) 주택이다. 공장에서 주요 부분을 찍어내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집이 뚝딱 완성된다. 저렴하고 튼튼해 만족도가 높다.
# 미래주택 뜬다
미래주택 개발 움직임이 활발하다. 주요 주택 건설회사들이 미래 수요 변화에 대비해 다양한 미래주택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주택 개발을 촉진하는 것은 무엇보다 인구구조 변화다. 1~2인 가구 증가, 고령자 급증, 베이비붐 세대 은퇴 등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집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이른바 ‘강소주택’ 개발이 활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 미래주택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고온다습하고 겨울에 한랭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여름에는 후텁지근하고 겨울에는 삭풍이 살을 파고들어 에너지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는 데다 석유 등 지하자원 고갈 문제가 예상되고 있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이런 시대적 과제에 맞춰 건설사들이 에너지 사용량을 사실상 제로로 만드는 집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안상태 대우건설 주택상품개발팀장은 “기술적으로는 에너지 사용량을 제로로 줄인 건축물 구현이 가능하지만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원가를 줄이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미래주택 개발의 원동력이다. 아파트 내부의 경우 친환경 자재를 사용해 새집 증후군을 없애는 것이 일반화했다. 커뮤니티센터에는 수영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들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지 안에 풍부한 녹지 공간을 조성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IT),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증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비즈니스 인구 증가 등도 집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 미래주택 트렌드는
미래에는 어떤 집들이 새로 나타날까. 이런 궁금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개발 업체인 피데스개발이 최근 제시한 ‘미래 주거공간 7대 트렌드’를 참고할 만하다. 피데스개발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매년 실시 중인 ‘주거공간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와 세계 각국의 트렌드 조사, 미래주택 전문가 의견 등을 통해 미래주택 트렌드를 내놨다. 주택관리 버틀러(집사) 서비스 주택 등장, 신캥거루족 주택 붐, 타임셰어 하우스 일반화, 주택 소비 양극화, 외국인 타운 확대, 안전주택 선호 현상, 매뉴팩처드 주택 활성화 등이다.
주거 공간의 타임셰어(time share)는 집에 대한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이용으로 바뀌면서 주거 공간을 여러 사람이 시간 단위로 나눠 공동 사용하는 것이다. 2년이나 1년 단위로 임대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주·하루·반나절 단위까지 선택할 수 있다.
가벼운 일상 생활용품만 지니고 옮겨 다니며 여러 집을 이용한다. 콘도나 리조트 같은 상업용 건물에서 이미 시행해온 개념을 주거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기술 발전이 수요와 공급을 잘 연결시키면서 타임 셰어가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휴가나 출산·보육·이직·전근·교육 등 일정 기간 집을 빌려주거나 영화처럼 집을 서로 맞바꿔 사용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할 나이인데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캥거루족’과 달리 ‘신캥거루족’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가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부모와 동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가 아파트 가격 및 임대료 상승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부모에게 주거 공간을 빌려 쓰는 것이다.
# 산업간 컨버전스 확산
주택이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가 직접 짓던 단독주택 건축, 아파트 중심의 공동주택 건축 시대를 지나 매뉴팩처드 주택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흥미롭다. 이는 공장에서 제작한 부자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을 의미한다.
건설업이 제조업의 장점을 접목하는 일종의 산업 간 컨버전스로 볼 수 있다. 모듈러 주택이 발달하면서 쉽고 빠르고 다양한 주택 건축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형성되고 있는 연희동 ‘차이나타운’, 동부이촌동 ‘리틀도쿄’, 혜화동 ‘필리핀마을’, 화성시 ‘베트남거리’ 등 지역마다 외국인 특화 거리와 타운이 조성되면서 주택시장과 주거 문화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일상의 번거로움을 대신하는 전문 집사도 일상화할 전망이다. 기존 고급 주상복합이나 레지던스에서 제공하는 호텔형 서비스가 아니라 동호인 주택, 커뮤니티 주택 등이 진화·발전하면서 주택 내에서 일상의 번거로움을 대신하는 저렴하고 다양한 관리 서비스가 등장한다는 얘기다.
이 밖에 강소주택의 강세 속에 일부 고급주택·중대형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택 소비의 양분화 현상’이 나타나고, 기상 이변과 자연 재해 증가 등으로 ‘안전 주택 선호 현상’이 높아질 전망이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