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런 폭스 박사는 의과대학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게임이론을 응용한 강의를 했다.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그는 명쾌한 설명과 깔끔한 외모, 열정적인 태도와 풍부한 유머로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강연 후 설문조사에서도 매우 탁월한 강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 강연에는 문제가 있었다. 폭스 박사는 사실 ‘배트맨’ ‘형사 콜롬보’에 출연했던 마이클 폭스라는 배우였던 것. 가짜 박사의 강의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과학 논문을 토대로 구성한 얼토당토않은 내용이었다. 청중들은 강의 내용과 상관없이 사전에 소개된 폭스 박사의 배경과 외모에 매혹됐다. 마이클 폭스가 폭스 박사가 돼 대중을 홀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폭스 팩터》는 평범한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 ‘행동 설계의 비밀’을 파헤친다. 정치인들은 오랜 세월 폭스 팩터를 활용해 추종자를 만들어냈고, 권력을 차지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소수 정치 엘리트와 연예인이 사용하던 이미지 설계 방법을 일반인들도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정치·연예계, 학교와 직장 등 거의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폭스 팩터”라며 “판단력을 키우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려면 폭스 팩터의 영향력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폭스 팩터의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 워런 하딩 대통령이 있다. 그는 초점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주 말실수를 저질러 일부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대중들은 반대였다. 특유의 강한 이미지와 화려한 어법, 타고난 듯 권위 있는 분위기, 상냥하고 인간적인 말투 덕에 대통령감으로 지목됐다. 희대의 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언변과 똑똑한 이미지로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까지 맡았지만 결국 다단계 금융 사기로 월가와 전 세계를 뒤흔들고 말았다.

‘폭스 팩터’와 반대되는 ‘안티 폭스 팩터’의 사례도 흥미롭다. 폴 포츠와 수전 보일 등 텔레비전 경연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가 된 두 사람은 처음 무대에 등장했을 때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한쪽으로 고개가 처지고 볼은 부어 있는 데다 치아가 고르지 않고 자신감도 없어 보이는 폴 포츠가 오페라를 부를 수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수전 보일 역시 헝클어진 머리에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심사위원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결국 감동적인 노래 선율로 듣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폭스 팩터가 영향력을 갖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우리 뇌가 능동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뇌는 언제나 더 단순한 해결안을 갖고 그것을 더 단순한 형태로 제시하고자 하는 ‘경제적인 활동’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정보처리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도하기도 한다. 단어와 표정, 끄덕임 등 사소한 자극에 영향을 받으며 견고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짧은 시간 안에 ‘폭스 박사’가 되는 법도 덧붙였다. 의식과 휴식의 활용, 몸짓언어와 말의 속도 조절, 눈맞춤과 손짓, 발짓 등으로 더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폭스 팩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대선 주자들도, 폭스 팩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 사고의 함정을 경계해야 할 유권자들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