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반일(反日)시위 현장에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마오쩌둥의 커다란 얼굴 사진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36년 전에 죽은 마오쩌둥을 ‘중국 신(新)좌파’가 집단시위 현장으로 끌어냈다고 지적했다.

신좌파는 1950년대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지만 좌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급진적 사회운동가를 지칭하던 말이다. 사회적 모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급진 좌경세력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중국의 신좌파라고 해봐야 아직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불만세력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 세(勢)가 불어날 조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폭동 직전 단계인 0.49에 달한다. 부정부패로 해외에 도피한 공무원은 지난 11년간 2만명이고, 해외로 빼돌린 자금만 171조원 정도 된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세력

마오쩌둥 사진이 군중의 손에 들려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오쩌둥이 공산혁명을 일으켜 봉건왕조와 군벌시대를 종식시키고, 문화대혁명으로 자본가를 완전히 몰아낸 것처럼 대변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30여년 전의 평등을 다시 말했다가 정치적 사형을 당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인기가 치솟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시라이는 국영기업에서 돈을 뺏어다가 가난한 집 아이들 130만명에게 매일 우유와 빵을 배급했다. 폭력조직과 밀착한 관리들을 직위에 관계없이 처단하면서 주가를 높였다. 비록 권력투쟁에서 밀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사람들은 마오쩌둥의 이름을 붙여 그를 ‘보쩌둥’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새로운 정치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신좌파든 뭐든 원리주의적 정치세력은 항상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그 뿌리를 박는다는 데 있다. 보시라이만 해도 충칭시민들에게 혁명드라마를 보고 혁명가요를 부르도록 했다. 관리들은 하방(下放)을 보내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농민들의 의료보험 혜택을 대폭 늘리되 재원은 빚을 끌어다 썼다. 마오쩌둥은 홍위병이란 사병조직을 만들어 1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초법적인 통제와 억압, 그리고 무질서가 지배하는 권력투쟁의 연속이었다.

초법적 권력과 부패가 문제

중국 지도부는 신좌파 등장 조짐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경제적 발전으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더욱 높아질 것이고 보면 신좌파의 정치세력화 내지는 집단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보시라이를 처벌하고, 마오쩌둥 사진을 치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제도 위에 권력이 군림하는 후진적 시스템으로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사라지긴 어렵다. 다음달 최고권력 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의 멤버 교체가 예정돼 있지만 아직 그 구성원조차 확정되지 않았다는 소문이다. 10년 전 현직에서 물러난 장쩌민이 최고위직 인사에 간여하는 것을 당연시할 만큼 권력구조가 불안정하다.

공산주의란 이름이 무색하게 진행되고 있는 계급대립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다. 차기 지도부가 빈부격차 해소와 부패 척결, 그리고 민주화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마오쩌둥과 보시라이 사진을 높이 쳐든 신좌파 시위를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