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16일 오전 6시32분

일부 거액 자산가들이 작년 하반기 유럽 은행들이 발행한 영구채권(채권형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로 급락했던 채권 가격이 점차 회복되면서 작년 9월 저점에 비해 2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영구채권은 정해진 만기 없이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이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부도날 경우 다른 채권보다 상환 순위가 밀리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 채권으로 분류된다. 발행회사 선택에 따라 수년 뒤 돈을 갚을 수 있는 ‘콜옵션’이 있어 중도 상환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격 급락하자 집중 매입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부 거액 자산가들은 작년 하반기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 크레디아그리콜 HSBC BNP파리바 등이 발행한 외화 표시 영구채권을 집중 매수했다. 스페인 등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다.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작년 하반기부터 올초 사이 영구채권을 포함한 유럽계 은행 채권을 약 600억원어치 사들여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며 “유럽 은행채는 투자 권유가 가능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거액 자산가들에게만 조용히 중개했다”고 말했다.

거액 자산가들은 신한 우리 등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발행한 영구채권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채권 판매 규모는 400억원에 달했다. 판매는 보통 10만달러(약 11억원) 단위로 이뤄졌다.

이들 중 절반 정도는 자산 일부를 외화로 계속 운용하기 위해 환 헤지(위험 회피)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투자증권의 또 다른 PB는 “유럽계 은행 영구채권의 매력은 인지도와 이자율이 모두 높다는 점”이라며 “많은 고객이 유럽시장 불안감이 완화되면 금리 하락에 따른 자본 차익을 누릴 수 있다고 보고 채권을 매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채권값 20% 상승에 이자수익까지

독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2009년 4월 발행한 한 영구채권은 작년 9월 액면 1000유로당 909유로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1092유로에 호가되고 있다.

해당 채권을 저가에 사서 보유 중이라면 채권 가격만 20% 이상 오른 셈이다. 여기에 이자는 덤이다. 1년에 한번 액면금액의 9.5%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하는 이 채권은 2015년 3월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로 따지면 작년 9월 최고 10.441%에서 지난 12일 8.695%까지 떨어졌다.

앞으로도 이 같은 해외 영구채 판매는 늘어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유럽 은행이 발행하는 영구채는 이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들 국가는 금리가 낮아 수익률이 연 3%만 돼도 기꺼이 투자하려는 개인과 기관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회사채 판매에 적극적인 한 증권사의 PB는 “해외 영구채 판매를 내부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라며 “국내 기업들의 영구채 발행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발행하는 물량을 중심으로 매매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