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개발 공약은 대선 때마다 나오는 일종의 마약이다. 안 줄 수가 없어서 고민이지만….”(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 핵심관계자)

“메가공약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게 없고 실효성도 의문이다.”(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 핵심관계자)

2012년 대선정국에서 ‘메가공약’(초대형 공약)이 사라졌다. 대선 후보들이 복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선 화두에서 경제성장이 사라졌고 경제민주화 경쟁 속에서 여야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우선 대통령 선거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국을 뒤흔들 초대형 개발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 박 후보, 문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약속이나 한듯이 초대형 개발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대운하’와 ‘747’(연 성장률 7%,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공약으로 대선에서 재미를 봤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가 ‘신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해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박 후보 캠프 핵심관계자는 17일 “마약과도 같은 메가공약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이번 대선에는 그런 공약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문 후보 측도 부정적이다. 문 후보 캠프 공감1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대선 이슈는 과거와 달리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국민들의 삶의 질 문제가 핵심인 데다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에 대한 학습효과로 초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복지정책들을 앞다퉈 내놓은 상황에서 수십조원이 소요되는 추가 SOC공약을 내놓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운하사업과 747공약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성격이 강하다”며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엇비슷할 때는 메가공약에 따른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쉽게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전후해 새누리당이 ‘메가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초대형 개발 공약이 사라진 자리를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대신함에 따라 대선 주자 간 정책차이도 크게 희석되는 양상이다. 세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제1정책공약으로 제시하는 일종의 ‘버츠켈리즘’ 현상(butskellism·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복지노선을 두고 같은 정책을 제시한 데서 따온 정책동조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 여야간 경계도 모호해졌다.

아울러 대선 화두에서 경제성장이 사라졌다. 과거 대선의 단골메뉴였던 7% 성장 등의 용어를 찾아볼 수 없다. 글로벌 경제위기상황이 영항을 미친 결과다. 성장을 무시하기보다는 복지확대를 통한 분배에 무게를 싣고 있는 탓이다. 각 후보진영이 성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복지를 실현한다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달리 복지와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성장은 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에는 합의쟁점과 대립쟁점이 있는데 대선 주자들의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합의쟁점만 얘기하고 대립쟁점을 피해가는 게으른 선거전을 펴고 있다”며 “정책 차별점이 있어야 국민들이 누가 내 호주머니를 채워줄지를 보고 결정하는 소위 ‘포켓 밸류 보팅(pocket value voting)’을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