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빌딩에서 수표동 시그니처타워로 ‘공간 이동’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직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동안 경영 갈등을 빚어온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물리적으로 결별하며 ‘홀로서기’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건물 옥상 쪽 외관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상징이었던 빨간색 윙 로고 없이 ‘금호석유화학’이라는 사명만 쓴 간판도 내걸 예정이다.

2009년 말 대우건설 유동성으로 위기에 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정상화 방안 발표에 이어, 이듬해 2월 채권단과 금호 오너 일가가 분리 경영에 최종 합의한 지 2년여 만의 일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활동폭도 넓어졌다. 박 회장은 사옥 이전 후 직원들의 근무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비서실도 모르게 각 층을 개별적으로 찾아다녀 ‘회장님 실종 사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회장은 전 계열사 임원확대회의에서 “과거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라는 우산이 있어 다소 도움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홀로 서야만 한다”며 독립 경영을 강조했다.

박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한 뒤 지난해까지 금호석유화학은 2년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밖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고, 안으로는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등 제품 20개라는 ‘비전 2020’을 달성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2년 연속 최고 실적’ 순항 돛 올렸다

1970년 설립된 금호석유화학은 국내 최초로 합성고무 생산을 시작해 세계 1위 합성고무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합성고무와 함께 합성수지, 정밀화학, 전자소재, 에너지 등이 주요 사업으로 국내 9개 공장과 아시아, 북미, 유럽 등 9개 해외 지사 및 5개의 합작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매출 4조9600억원에 영업이익 5700억원을 올리며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고, 지난해에도 매출 6조4000억원에 영업이익 8400억원으로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수출을 통해 매출의 70%를 거두고 있어 2005년 10억달러, 2008년 20억달러, 2011년 30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성과의 기반은 내실 경영이다.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이후 2010년부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비상경영대책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비상경영의 방향은 ‘기본을 재점검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김성채 사장을 위원장으로 전략기획, 원료, 기술, 자금, 국내외 주요 영업팀의 팀장 및 실무자로 구성했다. 초기 비대위는 조직 내 부문 간 정보 교류와 합의 형성을 통해 전략을 신속하게 세우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지만, 현재는 위기 극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회의를 통해 시장별 주요 사항, 손익 관리 포인트와 문제점에 대한 실시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분리 경영과 함께 유동성 문제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진 금호석유화학은 그동안 미뤄왔던 시설 투자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 착공한 이후 3년간 다섯 번이나 중단 위기를 맞다가, 지난해 2월 마침내 준공한 여수 고무제2공장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채권단으로부터 경제성을 인정받은 이 공장은 사내에서는 ‘경영 정상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기존 공장보다 140% 높아진 생산성을 바탕으로 준공 직후 100% 가동률을 보이며, 연간 40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조규정 금호석유화학 홍보팀장은 “내부적으로는 전사적 위기 극복을 위해 원가 절감, 업무 효율화,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받는 ‘제안팀 찾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매출 20조원 목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기준 연산 102만으로 세계 최대 합성고무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합성고무 부문에서만 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BR)와 부타디엔고무(BR) 등 2개의 세계 1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 2개가 추가될 예정이다. 모두 범용 합성고무 제품으로 천연고무에 비해 내마모성 내열성 내수성 등이 우수해 타이어와 신발, 고무 호수와 벨트 등에 쓰이고 있다.

합성고무의 글로벌 경쟁력을 기반으로 금호석유화학은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를 차세대 핵심 제품으로 육성하고 있다. SSBR은 친환경 타이어에 필요한 제품으로 세계 수요가 늘고 있다. 회사 측은 2014년 상반기까지 SSBR 10만 추가 증설을 검토 중이다. 현재 2만4000에 12월 가동 예정인 6만을 합치면 2014년 총 18만4000으로 세계 1위로 올라선다.

임경진 전략기획팀장은 “글로벌 타이어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친환경 타이어를 앞다퉈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며 “친환경 타이어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SSBR 시장은 2020년까지 연평균 6%씩 성장해 2020년이면 전 세계적으로 7조5000억원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탄소나노소재 등 미래 먹거리

합성고무를 중심으로 한 기존 사업에서의 안정적인 수익뿐 아니라 에너지와 탄소나노소재 등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사업 확대에도 투자를 늘려 나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15년 전인 1997년 제품 생산공정에 필수적인 스팀 자체 공급을 위해 유연탄을 연료로 하는 열병합발전소 ‘여수제1에너지’를 설립하며 에너지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2009년 국내 최초로 폐타이어 고형연료(TDF)를 활용한 여수제2에너지를 세웠다. 폐타이어로 만든 고체연료인 TDF는 가격이 유연탄의 절반 수준이지만, 열량은 ㎏당 7500㎉로 유연탄(6200㎉)보다 높은 고효율성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여수제2에너지 증설 계획과 함께 2015년까지 에너지 사업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에너지 사업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화학 계열사의 핵심사업 증설 이후 필요한 스팀 전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남는 전기는 전량 전력거래소에 판매할 예정이다.

철의 100배에 이르는 인장 강도와 구리보다 1000배 높은 전도성을 가진 탄소나노소재도 신성장 동력의 하나다. 탄소나노튜브 물질에 대한 원천특허는 미국의 하이페리온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20년이 지나 특허가 끝났다. 현재 독일 바이엘, 프랑스 알케마 등 글로벌 화학기업들이 자체 제조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전지와 콘덴서, 바이오, 의약,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차세대 물질로, 탄소나노튜브를 주력 사업 부문인 합성고무와 합성수지 사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아산에 연산 50 규모의 탄소나노튜브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