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노벨과학상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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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NIH(Not-Invented-Here)’ 신드롬. 좋은 의미가 아니다. 남들이 연구하거나 발명한 건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들이 최초, 최고라고 믿는 증후군이다. 선진국에서 나타난다고 ‘선진국 병’으로 불린다. 굳이 병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그런 자만심이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어서다.
노벨과학상은 이번에도 우리를 비켜가고 말았다. 미국, 유럽은 아예 제쳐두자. 언제부턴가 우리가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가능성보다 일본이 또 받을지 그게 더 큰 관심사가 돼버렸다. 그 때마다 선진국의 NIH 증후군이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다. 그 덕분에 독창적 연구가 많이 축적됐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
'NIT' 신드롬이 문제다
NIH와 비교되는 개념이 ‘NIT(Not-Invented-There)’ 신드롬이다. 선진국에서 연구했거나 발명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아예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증후군이다. 선진국을 언제나 쫓아가려고만 하는 ‘후진국병’인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은 노벨과학상이 지금까지 어느 분야에서 나왔고,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또 어딘지 분석했다. 결론은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행연구나 선진국 동향이 구체적이지 않은 연구계획서로는 연구비를 딸 수 없는 게 우리네 풍토다. 세계에서 처음하는 연구라면 딱 불신받기 십상이다. 정부가 이 정도면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캐치 업(따라잡기)’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그런 전략 아래서 노벨과학상을 못 받은건 당연한 결과다. 싫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노벨과학상 같은 건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위로를 해야 하나. 상황은 해마다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절박하게 들린다. 선진국도 모르는 길을 찾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산업마다 독창적 연구에 대한 목마름이 갈수록 더해질 게 분명하다. 노벨과학상이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고만 할 수도 없게 됐다.
독창적 내부역량 길러야
이렇게 말하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NIH 증후군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미국 같은 선진국은 NIH를 지나 이른바 ‘오픈(개방형) 혁신시스템’으로 가는 판국인데 말이다. 그러나 오픈도 질적 수준이라는 게 있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나온 게 선진국의 오픈이다. ‘독창적 내부역량’과 ‘오픈’ 간 시너지가 그만큼 큰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오픈 자체는 사실 우리에게 새로울 것도 없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캐치 업 전략 자체가 바로 오픈 전략이었다. 필요한 기술은 밖에서 조달해 왔다. 로드맵까지 있어 선택과 집중전략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오픈으로는 선도자(first mover)가 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는 새로운 길을 탐색할 수 있는 독창적 내부역량 확충일지 모른다.
‘창조’니 ‘융합’이니 떠들지만 독창적 내부역량 없이는 그야말로 허상이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돈도 돈이지만 정부부터 연구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로드맵조차 없는 불확실성 아래에서 선택과 집중전략이 통할 리도 없다.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벨과학상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성과 아니겠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노벨과학상은 이번에도 우리를 비켜가고 말았다. 미국, 유럽은 아예 제쳐두자. 언제부턴가 우리가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가능성보다 일본이 또 받을지 그게 더 큰 관심사가 돼버렸다. 그 때마다 선진국의 NIH 증후군이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다. 그 덕분에 독창적 연구가 많이 축적됐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
'NIT' 신드롬이 문제다
NIH와 비교되는 개념이 ‘NIT(Not-Invented-There)’ 신드롬이다. 선진국에서 연구했거나 발명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아예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증후군이다. 선진국을 언제나 쫓아가려고만 하는 ‘후진국병’인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은 노벨과학상이 지금까지 어느 분야에서 나왔고,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또 어딘지 분석했다. 결론은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행연구나 선진국 동향이 구체적이지 않은 연구계획서로는 연구비를 딸 수 없는 게 우리네 풍토다. 세계에서 처음하는 연구라면 딱 불신받기 십상이다. 정부가 이 정도면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캐치 업(따라잡기)’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그런 전략 아래서 노벨과학상을 못 받은건 당연한 결과다. 싫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노벨과학상 같은 건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위로를 해야 하나. 상황은 해마다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절박하게 들린다. 선진국도 모르는 길을 찾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산업마다 독창적 연구에 대한 목마름이 갈수록 더해질 게 분명하다. 노벨과학상이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고만 할 수도 없게 됐다.
독창적 내부역량 길러야
이렇게 말하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NIH 증후군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미국 같은 선진국은 NIH를 지나 이른바 ‘오픈(개방형) 혁신시스템’으로 가는 판국인데 말이다. 그러나 오픈도 질적 수준이라는 게 있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나온 게 선진국의 오픈이다. ‘독창적 내부역량’과 ‘오픈’ 간 시너지가 그만큼 큰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오픈 자체는 사실 우리에게 새로울 것도 없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캐치 업 전략 자체가 바로 오픈 전략이었다. 필요한 기술은 밖에서 조달해 왔다. 로드맵까지 있어 선택과 집중전략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오픈으로는 선도자(first mover)가 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는 새로운 길을 탐색할 수 있는 독창적 내부역량 확충일지 모른다.
‘창조’니 ‘융합’이니 떠들지만 독창적 내부역량 없이는 그야말로 허상이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돈도 돈이지만 정부부터 연구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로드맵조차 없는 불확실성 아래에서 선택과 집중전략이 통할 리도 없다.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벨과학상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성과 아니겠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