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완성차 공장 가운데 생산성 1위인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근로자들이 숨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생산라인 중 가장 힘든 곳인 의장라인 근로자들은 지난 18일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한국 현대차 공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문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근로자들은 없었다. 애슐리 프리예 생산담당 부사장은 “작업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징계를 받고 징계를 서너 번 받으면 해고사유가 된다”며 “작업장의 모럴(도덕규범)을 지키는 게 생산성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 공장은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하버리포트의 생산성 조사에서 북미 35개 공장 가운데 2010년부터 3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총 시간(HPV·hours per vehicle)’은 14.6이다. 한국 공장의 평균 HPV가 31.3이란 점을 감안하면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앨라배마 공장의 HPV는 2008년 20.7에서 2009년 19.9, 2010년 16.5 등으로 점점 단축되고 있다. NF쏘나타→YF쏘나타, 싼타페 구형→신형, 엘란트라(아반떼)구형→신형 등 잦은 신차 투입과 생산 증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데는 작업장 모럴과 함께 유연한 근무형태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득 앨라배마공장 법인장은 “자유로운 라인 간 전환배치, 교대제 변경, 연장근로 등을 통해 시장의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차 투입으로 생산라인을 조정할 때마다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은 없다는 얘기다.

작년 6월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 이어 앨라배마 공장도 생산량 확충을 위해 지난달 3교대제로 전환했다. 기존 주·야간 10시간 맞교대를 8시간씩 3교대로 변경하면서 24시간 풀가동 체제를 갖춘 것이다. 이 과정에서 823명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자 현지 언론들은 “현대차가 또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일제히 환영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공장이 교대제를 쉽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기존 근로자들의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의 근로자들은 근무시간 감소로 연간 임금(특근 제외)이 각각 6만4200달러 수준에서 4만8100~4만8800달러로 24~25% 줄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

스튜어트 카운테스 조지아공장 품질담당 이사는 “임금이 줄었지만 그 대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난 것에 직원들이 만족해한다”며 “작업시간 감소로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지아공장의 HPV는 19.5로 한국 기아차 공장(28.9)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신현종 조지아공장장은 “생산주문이 몰리면 언제든 특근을 할 수 있다”며 “정규직 외에도 용역업체의 파견 근로자, 임시직 등 다양한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아 공장의 비정규직은 10%, 앨라배마 공장은 25% 수준이다. 휴일근무 한도를 제한하고 비정규직을 없애라는 한국 정부와 노동계의 주장은 가뜩이나 밀리는 한국 공장의 생산성을 더 떨어뜨리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애슐리 프리예 부사장 "신규·숙련 인력 골고루 배치…3교대제 안착"

애슐리 프리예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생산담당 부사장(사진)은 생산성이 한국의 공장보다 높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유연하고 가벼운 조직, 생산라인의 베스트 프랙티스(모범 사례)를 통한 효율 개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직된 노동환경을 갖고 있는 한국과 달리 뛰어난 노동 유연성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프리예 부사장은 “3교대 시행으로 800여명의 신규 인력이 투입됐지만 숙련된 근로자와 골고루 섞어 배치할 수 있어 큰 탈 없이 3교대제가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닛산 공장에서 22년간 근무한 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설립멤버로 합류한 그는 “닛산의 테네시 공장은 비정규직을 50%가량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2년 전 대지진 여파로 부품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을 때도 일시해고,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생산조직이 민첩하게 대응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몽고메리·웨스트포인트=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