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혁 전 부산 삼부파이낸스 회장(58·사진)이 지난 7월 실종됐던 사건은 자작극인 것으로 드러났다. 양 전 회장은 13년 전 유사수신행위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인물이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지난 22일 오후 5시25분께 대연동의 한 커피숍에서 양 전 회장을 검거했다고 23일 밝혔다. 커피숍 직원의 신고로 붙잡힌 그는 경찰에서 납치·감금된 것이 아니었다고 진술해 고의로 잠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 전 회장의 가족은 그가 7월13일 “삼부파이낸스의 남은 자산 수천억원을 관리하는 정산법인 C사의 하모 대표(63)를 만나러 강원 속초로 간다”며 거주지인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8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양 전 회장은 속초에 갔지만 하씨가 잠적하자 삼부파이낸스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끌어 그를 찾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부파이낸스의 남은 자산을 관리한 하씨는 지난해 11월 이 법인에 대한 부산지검의 수사 당시 잠적했던 인물이다. 양 전 회장은 그동안 삼부파이낸스의 은닉 재산을 되찾기 위해 몇몇 투자자와 함께 하씨를 찾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족이 실종신고를 한 뒤에도 8월 대구의 한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히고 이후 지인들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의 잠적 의혹이 제기돼 왔다.

경찰에 따르면 “양 전 회장은 평소 동생과 아들에게 하씨를 만나러 가서 연락이 두절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실종신고를 하면 경찰이 잠적한 하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의 행방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속초에서 하씨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40대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남자 2명을 만났다는 양 전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이번 실종신고 사건을 내사 종결하기로 했다. 양 전 회장은 고의 잠적과 부산 북부경찰서에 접수된 횡령 혐의 등의 고소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그의 실종사건이 고의 잠적으로 결론남에 따라 삼부파이낸스의 수천억원 자금 행방에 대한 경찰의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 전 회장은 1996년 1월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한 뒤 ‘연수익률 30%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금을 끌어모은 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횡령했다. 높은 수익률 보장이라는 광고에 속은 부산지역 서민들은 큰 손실을 봤다. 양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의 투자금을 운용하다 부도를 낸 후 1116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1999년 9월 구속,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04년 출소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출소 후 재기를 위해 정산법인을 만들고 모든 자산을 측근인 하씨에게 맡겨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그가 은닉해 놓은 자산이 최대 4000억원에 이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출소한 후 하씨가 약속과 달리 자신이 맡겨놓은 은닉 재산을 떼어먹으면서 두 사람 사이는 멀어지게 됐다는 게 양 전 회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수천억원대 재산 은닉설’은 양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하씨가 실제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