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을 꾸는 손녀뻘 여고생을 보니 정말 행복해요. 제 나이쯤엔 큰 작가가 돼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조선윤 씨·62) “대학에 못 들어가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살다가 이렇게 평생 문학을 간직하며 살아온 분을 보니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어요. 저도 평생 문학소녀로 살 거예요.”(한연주 양·17)

60대부터 10대까지 제주에서는 모두가 ‘문학소녀’였다. 손자를 둔 할머니의 얼굴에 핀 주름은 인생이 담긴 문학 그 자체였고 10대 작가 지망생은 그 주름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다.

동서식품이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지원자 2만여명 중 40명을 뽑아 25일 떠난 제주문학기행. 참가자 40명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10대 1명, 20대 8명, 30대 12명, 40대 8명, 50대 10명, 60대 1명. 최고령자는 경기 성남시에서 온 조선윤 씨, 최연소는 서울 명덕여고 2학년 한연주 양이다. 충북 보은이 고향인 조씨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뜻을 뒀다. 소월시집을 갖는 게 소원이었던 10대, 동네에 한두 명 있을까말까한 대학생 집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1975년 결혼해 성남에서 살던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10여년 전. 삼남매가 장성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자 배운 컴퓨터에 넋두리를 풀어놓으면서다.

“컴퓨터를 켜놓고 무작정 생각나는 것, 느끼는 것들을 느린 타자로 써내려갔어요. 자식이 속을 긁을 때나 슬픔 같은 것들이 생길 때….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제가 정말 문학을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씨는 이번 동서문학상에 세 번째 도전했다. 그가 “지난 6월 출가한 막내아들 내외에게 주고 싶은 말을 적은 수필을 냈다”고 하니 옆에 있던 한양이 웃으며 이렇게 받는다. “지금 사귄 지 8일된 남자친구가 있는데, 저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 아들이 결혼할 때 글을 써주고 싶어요.”

학교에는 “체험학습하러 간다”고 하고 제주에 온 한양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동서문학상에는 단군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소설을 냈다. 사회성이 부족한 웅녀가 점차 집밖으로 나오면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날 제주문학기행 참가자들은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인 소설가 김홍신 씨와 함께 3000권의 문학서적을 소장한 제주문학의집과 칠십리 시 공원, 자구리 해안, 정방폭포 등을 걸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김효정 씨(35)는 “대학 때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졸업 후엔 잊고 살았는데 참 좋다”며 “힘들 때 시를 쓰며 하소연하는 게 삶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온 이유리 씨(42)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제주까지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 해도 상 받은 거라 생각한다”며 “여기 온 모든 사람이 앞으로도 힘을 내서 살아갔으면 한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김홍신 씨는 “시련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고 열정이 생기면 분명 뭔가를 뒤집어 낸다”며 이들을 격려했다. “한국인 모두가 이번 문학기행 참가자들처럼 열정을 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겁니다.”

제주=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