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를 보면 괴물이 나올 때보다 주인공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감지될 때가 더 무섭다. 경제문제도 정작 문제가 터지면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논의만 무성할 때가 제일 공포스럽다. 가계부채 문제가 바로 그렇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최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린 국제신용평가사들도 한결같이 한국 경제의 근심거리로 가계부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계부채라는 공포의 그림자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놓을 때만 해도 801조4000억원(2011년 3월말 기준)에 달하던 가계부채 규모가 올해 6월 말 921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그 증가속도는 현저히 둔화됐다.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1.1% 증가해 지난해 상반기 증가율 3.6%에 비해 2.5%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무섭게 치솟던 증가율이 꺾인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경제 전체적으로 가계대출에 대한 수요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금융권의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주로 해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등 미시적 대책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증가율이 둔화됐다고 하나 풍선효과가 작용해 노령자, 자영업자, 저소득자 등 사회 취약계층은 제도권에서 밀려나 부채 위험성은 더 높아졌다.

최근 들어 가계부채발 공포영화의 분위기를 더 스산하게 만드는 것은 빠르게 냉각하고 있는 국내경기와 더불어 전체 가계대출의 45.5%인 395조4000억원이나 되는 주택담보대출의 담보가치 급락 현상이다. 국토해양부의 수도권 실거래가 지수를 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2008년 7월의 최고치 대비 수도권 대형아파트 가격은 16.8%나 하락했다. 수도권 주택의 낙찰가율은 금년 들어 6월까지 지난해 말에 비해 4.0%포인트, 아파트 경우는 4.9%포인트나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가장 왕성하게 주택을 매수하던 실수요계층인 가구주 35~54세 세대의 주택매수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고 이들의 인구비중도 감소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금융권에서 노력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주택시장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고령화 및 저출산 문제와 더불어 한국 경제를 강타한 것은 1~2인 가구의 증가다. 2인가구가 24.3%로 주된 가구유형으로 등장하고 1990년 이후 가장 많은 가구유형이었던 4인가구 비중이 22.5%로 2005년에 비해 불과 5년 사이에 4.5%포인트나 급감한 것이다. 소유에서 거주의 개념으로 주택의 소비구조가 바뀌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보니 집값 하락으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자 위기에 몰린 하우스 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물론이고 렌트푸어(rent poor) 이야기마저 나온다. 이 정도 되면 가계부채문제는 시한폭탄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고 관련자들은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계절이다보니 상환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안 나올 수 없고 폭탄돌리기의 판을 키우는 데 톡톡히 한 몫하고 있다. 이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외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할 시점은 지났다. 증가세가 꺾였다지만 경기침체 장기화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문제 풀기는 결코 득표용이 돼서는 안 된다. 10년 전 카드사태 때처럼 문제를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경기냉각이 길어질수록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 노령자, 자영업자, 저소득자 등 가계부채 취약계층의 채무상환 여건을 개선해 이들의 부채가 부실화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또한 소득과 상환능력에 기반한 가계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인기영합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지금은 개개인이 부채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의 판을 키우는 공약을 내놓는 것은 공포영화의 필름을 빨리 돌리는 것일 뿐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