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노후생활에 방어벽이 돼야 하는 기초노령연금. 하지만 제도의 허점 탓에 빈곤층 대신 이득을 누리는 부유층 노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5일 65세 이상 노인이 있는 251만3000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최상위 10% 가구의 노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기초노령연금을 받아갔다.

◆타워팰리스 살아도 혜택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 지급된다. 올해 기준으로 노인 한 명은 월 소득인정액(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 78만원 이하, 노인 부부는 월 124만8000원 이하면 각각 한 달에 9만4600원과 15만1400원의 연금을 받는다.

그런데 노인의 소득을 따질 때는 자녀의 소득이나 재산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노인과 배우자만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렇다 보니 고소득층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도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고급 주거지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 961명을 대상으로 기초노령연금 수급 여부를 조사한 결과 5.6%인 54명이 연금을 받고 있었다.

KDI가 이날 발표한 ‘기초노령연금의 대상 효율성 분석과 선정기준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재확인됐다.

65세 이상 노인이 포함된 가구 중 소득 10분위(소득 상위 10%) 가구의 노인 가운데 54.2%(2009년 기준)가 연금을 받아간 것이다. 바로 아래 구간인 소득 9분위의 기초노령연금 수급률도 59.5%에 달했다.

◆‘노인 70% 지급’ 집착이 문제

윤희숙 KDI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취약 고령자 지원이란 제도 취지와 어긋난다”며 “노인 빈곤의 사각지대를 정조준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유층 노인들이 본인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연금을 받다보니 정작 빈곤층 노인이 소외되거나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될 때부터 예고됐다는 게 KDI의 지적이다. 정치권이 ‘전체 노인의 70%’라는 숫자에 집착하면서 자녀의 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 복지전문가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70세 이상 전체 인구에 지급하려다가 정부와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가 ‘노인인구 70%’ 기준”이라며 “어정쩡한 제도에 맞추려다 보니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고 꼬집었다.

윤 연구위원은 “함께 사는 자녀의 경제력을 고려하고 인구 비율이 아닌 빈곤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제도를 설계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만큼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