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천연 발효 효모 빵집이 생겼다. 이른 아침, 일본에서 발효빵을 공부하고 온 매력적인 남자 베이커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빵을 굽는 모습은 상당히 문학적이어서 빵집 앞을 지날 때마다 행복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시골에 이런 세련된 빵집이…’ 하고 처음엔 모두들 반신반의했지만 양평엔 나처럼 건강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 살고 있는 관계로 오후 세시쯤이면 이미 빵이 다 팔리고 없다. 요즘은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서울에서도 사모님들이 몰려와 한꺼번에 몇 십개씩 ‘싹쓸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그의 발효빵은 ‘no milk, no butter, no sugar’, 거기에다 베이킹파우더나 이스트도 전혀 쓰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 문명적인 것이 하나도 가미되지 않은 태고의 원시적인 빵이다. 사실 그저 둥글둥글 뭉툭하니 못생겼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쁘게 만들기 위해 너무 주물럭거리면 효모가 아플 수 있다는 것.

이건 뭐 약간 빵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전문적인 이야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빵을 발효시키는 효모균은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숨도 쉬고 화도 내고 가끔 미쳐버리기도 해서 매일 밥을 주고 어린애 보살피듯 애지중지 돌봐야 한단다. (알고 보니 빵의 세계도 광고 못지 않게 무척 복잡하다. 휴~)

어쨌든 그의 천연 발효 효모 빵은 빵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싹 바꾸어 놓았다. 그중 가장 신선했던 점은 ‘무거울수록 좋은 빵’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맛있는 빵 하면 예전에 쇼빵이라고 부르던 일본식 식빵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고소한 버터 냄새와 함께 자르지 않고 손으로 찢어서 먹던 그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빵.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이렇게 부드럽고 가벼운 빵들은 십중팔구 베이킹파우더나 이스트로 억지로 공기층을 만든 것이란다.

아, 어쩐지 속이 부글부글 하더라니. 가벼운 빵은 밀가루를 적게 써서 원가를 맞추기 위해서이거나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란다.

생각해보면 빵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가볍게’ 하는 것이 트렌드다. 자동차도 연비를 좋게 하려고 점점 더 가볍게 만들고 휴대폰, TV, 컴퓨터 등 모든 가전제품들도 앞다투어 가벼워지고, 남자든 여자든 더 날씬하고 가벼워지려고 애쓴다. 경량도 모자라 초경량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언제인가부터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너무 쉽게 갖고 또 버린다. 가벼울수록 좋은 것도 있지만 때론 무거워서 좋은 것까지도 가벼워져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겨우 빵 같은 걸 먹으면서 너무 심각한 것 아니냐’고 말해도 할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과 빵만은 무거울수록 좋다. 아니 확실히 그래야만 한다.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