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다. 서민 투자자의 손해배상을 위해 연말까지 사재출연 등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

LIG건설 기업어음(CP) 사기발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LIG그룹의 구자원 회장(77)이 26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개인 투자자의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사재출연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큰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 핵심 경영진이 사법 처리되면 그룹 전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재계에서 나온다.

구 회장은 “LIG건설의 법정 관리신청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CP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며 “2011년 3월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는 그 원인이나 잘잘못을 떠나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서민 투자자 여러분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신속한 검토를 통해 구체적인 배상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그는 ‘LIG건설의 법정관리로 인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구 회장은 “아시다시피 저는 평생을 기업인으로 살아오면서 오직 기업과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LIG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LIG그룹 측은 연말까지 구체적인 배상 방안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훈 (주)LIG 경영지원 이사는 “서민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배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사재출연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과와 배상을 위한 노력이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제까지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구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재출연을 약속한 것은 오너일가를 둘러싼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LIG그룹은 LIG건설이 공식적인 그룹 계열사가 아니고, CP 발행 역시 최고 경영진이 판단을 내린 사안이 아니라며 무혐의를 주장해왔다. 검찰이 구본상 부회장과 오춘석 (주)LIG 대표이사 등에 대해 사전구속 영장을 청구하자 백기를 들었다.

구 부회장은 구 회장의 장남으로 실질적인 그룹의 지배자로 꼽힌다. LIG넥스원 등 비금융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LIG홀딩스의 대표이며, 그룹의 핵심인 LIG손해보험(7.14%)에서 국민연금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구 부회장의 사법처리는 곧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공백을 의미하게 된다.

구 회장은 최대주주가 아니고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해 검찰이 영장 청구 대상에서는 제외했으나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구 회장의 차남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수사 추이에 따라 추가 영장 청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구 부회장과 구 부사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구철회 LG그룹 창업고문의 손자다.

이유정/서욱진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