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안철수의 단일화 선택은…
“정권을 바꾸고 정치를 바꾼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출사표다. 현 대선 국면에서 이보다 강력한 캐치프레이즈는 찾아볼 수 없다. 가장 곤혹스런 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다. 그는 ‘새 정치’ 프레임에서 쇄신의 대상이다. 안 후보가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기존 정치권의 쇄신이라는 카드를 던지는 순간, 졸지에 기득권 진영에 들어앉게 됐다.

의도한 것이었다면, 실로 절묘한 카드다. 안 후보는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문 후보는 방어에 급급하다. 국회의원 숫자를 100명 줄이고 정당 국고보조금을 삭감하겠다는 안 후보의 정치쇄신 공약은 점입가경이다. 그렇게 줄기차게 쇄신을 요구했건만 답이 없으니, 이제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모양새다. “안 후보가 현실정치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는 문 후보 측 평가는 그저 새 정치에 역행하는 이죽거림으로 비쳐질 뿐이다.

새정치 프레임으로 정국 주도

박-문-안 3자 대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역시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박 후보가 고전하는 이유는 과거 역사인식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역사관을 바꾼다고 해서 정치적 외연이 넓어질까. 당장 ‘진정성이 없다’는 반대자들의 날선 비판이 앞을 막아서고 있다.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그다지 큰 감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차별화도 안 된다. 그러니 정권과 정치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는 구호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의 강점은 원칙과 신뢰, 진정성과 애국심이었다. 지금 박 후보에게는 이 가치가 오버랩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와 진정성은 안 후보의 전유물이 됐다. 그가 쏟아내는 수사는 ‘진심’과 ‘진정성’으로 가득차 있다. 가계대책 해결을 위해 내놓은 기금명도 ‘진심 새출발 펀드’다. 그는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진정한 힘은 자기 내면의 엄정한 기준에서 나온다”고 썼다. 스스로 정치적 가치를 생산하고 비전을 창조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딱 부합하는 말이다.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은 이런 안 후보를 신뢰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로 역풍 맞을 수도

안 후보는 야권 후보단일화에 나설 것인가. 그가 내세운 전제조건은 ‘정치권의 쇄신’과 ‘국민의 동의’다. 큰 틀에서 보면 분권형 대통령제 정도를 제외하곤 민주당이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다. 안 후보도 민주당의 한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관건은 ‘국민의 동의’다. 3자 대결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범야권의 여론이 안 후보에겐 가장 부담스럽다. 선뜻 단일화에 나설 수도, 섣불리 거부할 수도 없는 딜레마다. 단일화는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뜻한다.

그런데 양측은 태동 기반이 다르고 정치적으로 동질적이지도 않다. 3자 대결에서 자신만을 지지하는 30%의 국민들은 단일화의 명분을 요구할 것이다. 그동안 경쟁자들을 코너로 몰아붙였던 새 정치 프레임은 거꾸로 안 후보를 옥죄어 올 것이다. ‘이게 새 정치를 바꾸겠다는 사람의 진정성이냐’고….

후보 단일화를 주창하는 야권 원로들이야 다급하겠지만, 안 후보가 처한 사정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단일화와 완주 사이에서 정치적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의도치 않게 정치공학적 게임에 빨려들어가는 순간 훨씬 많은 것을 잃게 돼 있는 포지션이다. 어쩌면 안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맞이한 최대의 승부처는 대선 승리 여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30%의 독자 지지층이 뿔뿔이 흩어지는 날이면 이른바 ‘안철수 현상’도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