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국 상하이(上海) 민항구 근처. 상하이 중심가와 변두리의 접점으로 대형마트와 대규모 건설자재 시장 등이 밀집한 이곳에 5000㎡ 규모의 대형 유아용품 매장이 문을 열었다. 2009년 난징(南京)에서 창업한 하이즈왕(孩子王)의 매장이다. 사람들은 “도심 지역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큰 유아용품 매장이 되겠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쉬웨이훙(徐偉宏) 하이즈왕 사장은 “된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6개월 내 상하이에 5곳, 중국 전역에 20곳의 매장을 추가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유아용품 복합 문화공간

쉬 사장은 2006년까지 중국 3위 가전제품 유통업체 우싱(五星)전기에서 일했다. 당시 쉬 사장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난징 토착기업이던 우싱전기를 난징 외 지역에 처음 진출시킨 주역이 쉬 사장이었다. 그가 새로 세운 매장만 100개가 넘었다. 미국 가전제품 유통기업 베스트바이는 2006년 우싱전기를 1억8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쉬 사장도 적잖은 돈을 받았다. 곧바로 몇몇 직원들과 신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유통업 테두리 안에서 신사업 아이템으로 유아용품을 선택하는 것에 큰 이견이 없었다. 중국의 부유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자녀들, 특히 ‘1자녀 낳기’ 정책으로 낳은 외동 자녀에게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유아용품은 돈이 몰려드는 분야였다. 관건은 어떤 매장을 만드느냐였다. 중국엔 이미 수 많은 유아용품 매장이 있었다. 대부분 200㎡ 전후의 중소형 매장으로 아이템 수가 많지 않았다. 주로 산부인과 소아과 근처에 자리하며 병원을 찾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 매장의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즘 어린아이를 둔 중국 부모들은 주로 1970년~1980년대생이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본 뒤 값이 싼 온라인 매장에서 구매했다. 더군다나 3억명에 달하는 중국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온라인 구매 비중은 점점 높아졌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면 이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쉬 사장은 새로운 개념의 유아용품 매장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중국에서 급부상하던 ‘멀티플렉스’의 구조에 집중했다. 중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영화관, 노래방, 각종 쇼핑센터를 한데 모은 10만㎡ 이상의 초대형 매장들이 연이어 생겨났다. 가구업계 이케아가 이런 컨셉트의 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쉬 사장은 이런 구조를 유아용품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마미마미홈’이라고 이름 붙인 회사 홈페이지를 젊은 엄마들의 정보교류 장(場)으로 만들었다. 매장은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닌, 웹에서 교류한 모든 육아정보를 체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로 꾸몄다. 예를 들어 하이즈왕의 난징 매장에 가면 한쪽에선 임신부를 겨냥한 임신기 영양학 강의를 한다. 그 옆에서는 산후 회복기에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강의가 진행 중이다.

물론 매장에 가면 강의에서 언급한 상품들을 모두 살 수 있다. 엄마들이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쪽에 마련한 놀이방에서 논다. 놀이방 근처에는 1~14세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진열한 별도 매장이 있다. 다른 쪽에서는 피아노, 예체능 등 아이들을 위한 조기 교육이 한창이다. 임신·출산·육아의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셈이다.

쉬 사장은 “하이즈왕 매장은 유아용품 소매업장이 아니다”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원스톱 체험공간이고 온·오프라인 결합체”라고 강조했다.

○고객이 고객을 이끄는 시스템

매장 컨셉트는 정했지만 독특한 매장만으로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 적절한 경영 방침이 뒷받침돼야 했다. 대부분 대형마트는 지리적 위치를 통해 고객 유동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쉬 사장은 우싱전기에서 일하면서 이 같은 전략으로는 고객을 적극적으로 매장에 끌어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암웨이, 메리케이 화장품 등 ‘다단계’ 업체들의 고객 유인 방식에 주목했다. 고객 스스로가 영업사원처럼 다른 고객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전략이다. 쉬 사장은 다단계 업체들의 전략에 착안, 새로운 경영지표를 만들었다.

그는 다른 대형마트들이 주요 관리지표로 삼는 판매액, 수익률, 상품 회전율 등은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단순 고객이 아닌 회원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느는지, 기존 회원은 새 회원을 얼마나 끌어들이는지, 새 회원은 물건을 얼마나 사는지 등에 집중했다. 쉬 사장은 이렇게 모은 통계를 지표화하고, 인센티브 부여 등 경영 활동에 적극 반영했다. ‘입소문 마케팅’이다.

시간대별 마케팅 차별화 전략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주요 고객층인 주부들이 아이들과 쇼핑을 하는 시간은 주로 어린이집이 끝난 오후 3시에서 남편이 퇴근하기 전인 오후 6시 사이다. 쉬 사장은 이 시간대에 맞춰 마케팅 직원을 집중 배치하고, 거리 홍보도 강화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하이즈왕은 언론에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과 차별화 서비스로 고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하이즈왕이 지난해 거둔 매출은 1억8452만위안(약 328억원). 창업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연 평균 성장률이 677%에 달했다. 중국의 유아용품 업계 전문가들은 이 회사가 앞으로 3년간 최소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쉬 사장은 “내년까지 50개 매장을 만들고, 그 다음 5년간 200개를 추가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이 심할수록 성장한다

중국 유아용품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상하이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주식시장에 상장한 유아용품 업체인 보스와가 있다. 보스와는 중소형 매장을 주로 운영하지만 최근 하이즈왕처럼 대형 매장도 만들었다. 인지도는 하이즈왕보다 앞도적으로 높다. 하이즈왕이 전국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전 상하이에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쉬 사장은 “걱정없다”며 자신만만하다. 시장 규모가 충분히 크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1조위안 규모인 중국 아동용품 시장은 2015년까지 2배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충분히 경쟁사들과 같이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중국 유아용품 시장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꼽는 하이즈왕의 불안 요소 중 하나다. 중국 아동용품 시장은 제조업 쪽에서는 중소업체들이 난립하는 반면, 판매·유통 분야는 빠르게 대형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 하이즈왕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쉬 사장은 “시장 구조조정은 우리에겐 오히려 호재”라고 강조했다. 시장이 선진화할수록 고객관리를 잘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으며, 하이즈왕은 고객관리에 강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의 고객관리 모델은 아동용품 업계에서 뿐 아니라 중국 소매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선진적”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객을 잘 유인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며 “우리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