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전력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자발적인 절전과 전력당국의 유기적인 협조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어난 주택용 전기요금을 ‘전기요금 폭탄’에 빗댄 언론 보도와 서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전기요금으로 대기업을 지원해 준다는 비난이 뒤섞이면서 현행 누진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택용 누진제는 전기 절약 유도와 서민층 보호를 위해 많은 나라에서 도입했다. 선진국은 대부분 3단계 누진제(최고~최저구간 1.5배 수준)를 운영한다. 한국은 현재 6단계 누진제(누진율 11.7배 수준)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패턴 변화 등 시대 흐름에 대한 미흡한 대처와 과도한 누진율로 인해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첫째 월 100㎾h 이하를 사용하는 사용자 중 10%에 불과한 저소득층보다 90%를 차지하는 1인가구 등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 서민보호라는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 둘째 가구당 월평균 요금은 약 3만원(사용량 240㎾h) 수준으로 부담이 크지 않아 현행 요금제로는 자발적인 전기절약을 유도하기 어렵다. 셋째 우선적으로 정책 혜택이 돌아가야 할 서민층이 냉난방 전기설비의 보급 증가로 인해 오히려 ‘전기요금 폭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전기소비절약 유도와 서민층 보호라는 기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점을 안고 있는 누진제를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누진율을 완화하려면 1~3단계 구간 요금을 올리고, 5~6단계 구간 요금을 내려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사용량이 적은 서민층의 요금을 올려 부자들을 지원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누진제는 1단계의 낮은 요금부터 사용량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은 요금을 적용하는 제도여서 1~3단계 요금을 올리면 부자들의 부담도 늘어난다.

에너지 절약 유도와 서민층의 편익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현행 누진제의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 주택용의 경우 현행 6단계에서 3단계로, 누진율은 11.7배에서 2배 수준으로 축소하고 전체 요금수입은 적정원가 수준으로 책정해야 한다. 늘어나는 서민층 부담은 가족 수에 따라 매월 적정 쿠폰을 지급하는 ‘바우처제’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쿠폰 발행에 필요한 재원은 우선 전기요금 교차보조 방식으로 마련하고 점차 에너지 복지기금 등으로 조달 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남효석 < 한국서부발전 관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