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헤겔 선생 '다양성의 맛' 잡채 한번 드셔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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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철학
신승철 지음 / 동녁 / 265쪽 / 1만5000원
신승철 지음 / 동녁 / 265쪽 / 1만5000원
“잡채(雜菜)는 여러 개가 채 썰어져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채소’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잡다한 채소’의 줄임말이라고나 할까요? 저처럼 통합, 동일성, 통일의 원리보다 다양, 복수의 원리와 같은 잡다(雜多)한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헤겔과 같은 동일성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잡채는 해석 불가능한 원리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헤겔 선생! 다양성의 맛, 잡채 한번 드셔보시죠!’하며 한번 권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인 신승철 씨의 ‘철학하기’가 재미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우리 일상의 밥상에까지 두루 미친다. 《식탁 위의 철학》은 음식으로 맛보는 그의 철학 이야기다.
신씨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을 실마리로 해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풀어낸다. “당신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고 한 19세기 프랑스 법률가이자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살짝 비틀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그 음식 속에 담긴 철학을 말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 같다.
그는 잡채에 들어간 고기에서 독재적 권력 사상으로 향할 요소를 갖고 있는 ‘동일성의 철학’을 떠올린다. 차이와 다양성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독일 사상가 라이프니츠를 지나 민주주의는 차이의 생산, 특이성의 생산을 통해 풍요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프랑스 심리치료사 펠릭스 가타리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러면서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질서가 있는 한 미시적인 파시즘은 우리 안에 똬리를 튼다”며 “소수자 입장에서 소수자를 사랑하며 소수자가 되어보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도 그는 된장찌개에서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하는 ‘변용’의 개념을, 북엇국에서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짜장면 한 그릇에서 ‘시뮬라르크’ 개념을 꺼내 질 들뢰즈가 말한 ‘원본과 복제’에 관한 의미를 묻는다.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철학을 둘러싼 우리 삶의 이야기도 꺼낸다. 비빔밥을 비비며 동학의 공동체 정신을 이야기하고, 소주잔을 보며 점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가 돼 가는 보통 직장인들의 비애를 읽는다. 가스레인지에서 끓는 라면에서는 ‘더 빨리 더 간편하게’를 외치는 현대 사회의 속도주의 폐단을 짚어내고, 봉지 커피 한 잔에서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기도 한다.
그는 “부엌은 음식의 흐름,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있는 온갖 흐름의 공간이며 계약 관계, 욕망 관계,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관계의 공간”이라며 ‘철학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부엌을 정의한다. 또 “먹는 행위는 우리의 뼈와 살을 다시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며 “삶이 곧 철학이며, 일상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이 곧 철학이 아니냐”고 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인 신승철 씨의 ‘철학하기’가 재미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우리 일상의 밥상에까지 두루 미친다. 《식탁 위의 철학》은 음식으로 맛보는 그의 철학 이야기다.
신씨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을 실마리로 해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풀어낸다. “당신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고 한 19세기 프랑스 법률가이자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살짝 비틀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그 음식 속에 담긴 철학을 말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 같다.
그는 잡채에 들어간 고기에서 독재적 권력 사상으로 향할 요소를 갖고 있는 ‘동일성의 철학’을 떠올린다. 차이와 다양성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독일 사상가 라이프니츠를 지나 민주주의는 차이의 생산, 특이성의 생산을 통해 풍요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프랑스 심리치료사 펠릭스 가타리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러면서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질서가 있는 한 미시적인 파시즘은 우리 안에 똬리를 튼다”며 “소수자 입장에서 소수자를 사랑하며 소수자가 되어보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도 그는 된장찌개에서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하는 ‘변용’의 개념을, 북엇국에서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짜장면 한 그릇에서 ‘시뮬라르크’ 개념을 꺼내 질 들뢰즈가 말한 ‘원본과 복제’에 관한 의미를 묻는다.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철학을 둘러싼 우리 삶의 이야기도 꺼낸다. 비빔밥을 비비며 동학의 공동체 정신을 이야기하고, 소주잔을 보며 점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가 돼 가는 보통 직장인들의 비애를 읽는다. 가스레인지에서 끓는 라면에서는 ‘더 빨리 더 간편하게’를 외치는 현대 사회의 속도주의 폐단을 짚어내고, 봉지 커피 한 잔에서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기도 한다.
그는 “부엌은 음식의 흐름,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있는 온갖 흐름의 공간이며 계약 관계, 욕망 관계,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관계의 공간”이라며 ‘철학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부엌을 정의한다. 또 “먹는 행위는 우리의 뼈와 살을 다시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며 “삶이 곧 철학이며, 일상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이 곧 철학이 아니냐”고 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