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0여개의 가짜 검증 부품이 설치된 영광 5·6호기가 부품 교체를 위해 올 연말까지 가동을 중지할 예정이어서 올겨울 전력수급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 부품 교체가 내년 초까지 지연되면 전력 사용이 한꺼번에 몰리는 1~2월 피크기에 전력 예비력이 30만㎾까지 떨어져 지난해 9·15 정전대란과 같은 블랙아웃(전국 동시정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가짜 검증서에 속아온 한국수력원자력의 총체적인 관리 부실 및 조직적인 기강해이도 또 한번 논란이 될 전망이다.

○조직적 비리의혹 커

이번 품질검증서 위조 사건의 핵심은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등 4개 원전사업 본부에 퓨즈, 스위치 등 소모성 부품을 공급하는 8개 중소 업체들이 해외 기관에서 품질 인증을 받은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제품을 납품한 것이다. 인증 건당 300만원가량의 인증 수수료를 아껴 입찰 가격을 낮추려고 했을 것이라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송호분 한수원 설비기술처장은 “한수원이 품질검증기관으로 인정하는 해외 12개 기관 중 1개 기관의 품질 검증서가 집중적으로 위조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적발된 8개 업체와 이 검증기관이 연계돼 있는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10년간 위조 검증서가 붙은 부품이 지속적으로 공급됐지만 그동안 한수원은 매년 이뤄지는 자체 감사를 통해 한 건도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져 전·현 임직원들의 조직적인 연루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2001년 한수원이 한전에서 분리돼 나온 이후 원자력 기술직군 중심으로 이뤄진 이른바 ‘원전 마피아’ 얘기가 업계에 파다하다”며 “연초 발생한 고리 1호기 사고 이후 진행되고 있는 납품비리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원전은 이상없나

8개 납품업체가 10년간 공급한 7682개 부품 중 실제 원전에 장착된 부품은 5233개다. 정상부품 교체를 위해 5일 멈춰선 영광 5·6호기 외에 고리 월성 울진 원전에도 미검증 부품이 공급됐다. 다행히도 고리 월성에 공급된 부품은 비상 사태를 대비한 재고 부품으로 분류돼 설치되지는 않았다. 일부 미검증 부품이 들어간 영광 3·4호기와 울진 3호기는 영광 5·6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체 부품 수가 많지 않아 운전을 지속하면서 단계적으로 부품을 바꿀 계획이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이번에 문제가 된 해외 검증기관의 인증서 외에 다른 기관이 발급한 검증서도 모두 전수 조사를 실시해 위조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외 신인도 훼손 우려

가동을 멈춘 영광 5·6호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산 표준형 원자로인 ‘OPR-1000’이 적용된 원전이다. 이에 따라 한국형 원전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 원전 수출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형 원전 첫 수출 사례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은 OPR-1000의 후속 모델인 ‘APR-1400’이 쓰였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 원전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건설단가가 저렴하면서도 안전성과 이용률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번 일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해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정호/조미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