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프로젝트를 맡겼으면 최고경영자(CEO)는 연구자에 대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제대로 된 신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 ‘약의 날’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조대진 일양약품 수석연구원(46·사진)은 6일 이렇게 말했다. 조 수석연구원은 국산 18호 신약이자 최초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원료명 라도티닙)’ 개발을 총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양약품 창사 이래 소속 연구원이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공포의 난치병이던 백혈병은 스위스 노바티스가 ‘글리벡’을 개발하면서 정복되는 듯했다. 그런데 내성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하면서 노바티스가 타시그나(일명 슈퍼글리벡), BMS가 스프라이셀 등 2세대 약물을 개발한 상태다. 하지만 너무 비싸 환자 부담이 큰 상황이다. 슈펙트는 글리벡 내성 환자에 대한 뛰어난 효능이 임상 2상 과정에서 입증됐으며, 가격도 기존 글리벡 대비 절반가량 낮다.

조 수석연구원은 “1992년 입사 후 제네릭만 개발하다 보니 사실 재미가 없었고, 2002년 슈펙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제약 연구·개발(R&D)에 비로소 눈뜬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연구팀과 함께 10여년 동안 개발한 후보물질만 500여개가 넘는다. 그는 “500여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실패 때마다 ‘go or stop’, 즉 연구를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때 경영진의 간섭이 있었다면 슈펙트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구동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며칠간 집에 못 간 적도 다반사였다”고 했다.

슈펙트는 다국적 임상 2상 후 올해 1월 글리벡 내성 환자에 대한 2차 치료제(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로 품목 승인을 받았고, 올해 9월 시장에 나왔다. 현재는 내성 환자가 아닌 백혈병 신규 진단 환자에 대한 1차 치료제 승인을 위해 국내 및 동남아 4개국에서 다국적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말에는 임상 환자가 아닌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전북대병원 의료진이 처음으로 슈펙트 처방을 내렸다.

조 수석연구원은 신종 플루 등에 대처할 수 있는 광범위 항바이러스 신약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2011년 완공된 충북 음성 백신공장에서 이르면 내년부터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 수석연구원은 “슈펙트를 10년 동안 개발하며 축적한 노하우가 상당하다고 자부한다”며 “시장 출시 등 단기 목표에 집착하면 신약 개발이 요원한 만큼 제약 R&D에 대한 안정적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