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톰 샌디 때문에 집이 물에 잠긴 사람도 있고 신분증 등 각종 서류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그중에 투표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 서약서에 서명한 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선거를 해야 하죠. 오늘 투표소가 이렇게 부산한 이유도 다 그 때문이에요. 모두에게 힘든 하루가 되겠죠.” (초등학교 교사 크리스 배닙스 씨)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6일 새벽 뉴욕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해변의 에이브러햄링컨 고등학교. 최근 미 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다. 자신은 운이 좋아 정전 피해를 입는 데 그쳤다는 배닙스 씨는 “집을 잃은 슬픔에도 투표하러 온 이웃들이 자랑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이브러햄링컨 고교는 당초 투표소로 지정됐다가 수몰된 인근 그리드 고교 등 7개 투표소를 통합한 곳. 그러다 보니 새벽 6시부터 유권자들이 몰리면서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은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인데다 허리케인 피해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를 찾았던 곳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다는 유권자가 많았다. 배닙스 씨도 “오바마는 나라가 엉망인 상태에서 집권했고 그동안 오바마케어(새 건강보험개혁법안) 등 바른 정책을 써왔다”며 “중산층과 함께 있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멀린 비알바 씨는 “허리케인이 지역을 황폐화시켰을 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곳으로 날아와 이웃들을 위로해 준 오바마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유권자가 많다”며 “나도 오바마를 찍었다”고 전했다.

미트 롬니 지지자도 적지 않았다. 1999년 러시아에서 이민왔다는 일리아나 칼리건 씨는 “나는 롬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정책을 보면 과거 러시아 독재자들을 보는 것 같다”며 “나는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집 인근에 있는 투표소에 갔다가 장소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다는 열성 롬니 지지자도 있었다. 금융권 종사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조지 채들리 씨는 “샌디의 영향으로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내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힘들지만 투표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뉴욕과 뉴저지주는 투표일 하루 전에 240여개 투표소를 옮겼으며 이재민들에게 아무 장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뉴저지주는 이메일 투표를 허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