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립이 심할 때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결과가 될 수 있어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비롯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헌법개정 논란이 한창이지만 ‘한국 헌법학계 거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겸 명지대 석좌교수(79·사진)는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팔순을 맞아 지난 60년간 헌법 전공자로서 써온 칼럼과 에세이 등을 모은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소명), 연구논문을 총망라한 ‘헌법과 정치’(진원사)를 최근 잇따라 발간했다.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헌법 이슈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듣고자 지난 8일 김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상도동의 한국헌법연구소를 찾았다.

그는 국회가 중심이 되는 의원내각제나 그 전단계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래서인지 대선 후보들이 대체로 공감대를 보이는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금 있는 헌법만 잘 지켜도 대통령의 과잉권력은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김 교수는 ‘가장 안 지켜지는 헌법 조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이라고 답했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은 형식적이잖아요. 대통령이 대법원장도 임명하고 헌법재판소장도 임명하고, 게다가 임명권이 없는 공사 사장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데 국회는 정부 거수기가 돼서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하니 개헌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이 잘못돼 있다고 하면 헌법을 개정하는 게 옳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무상복지나 재벌해체 국유화도 헌법에 넣자고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헌법 119조2항에 나와 있는 ‘경제민주화’ 조문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한 김종인 씨(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가 독일 식의 경영민주화 개념을 따와 헌법에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 문구를 넣었을 텐데 좌파들이 미국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독일에선 경영주와 노조가 반반씩 구성된 경영위원회에서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공동결정법이 있다. 소득분배 등은 119조2항 앞부분에 언급돼 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헌법 119조1항(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에 나오는 ‘기업’이란 문구는 1987년 9차 헌법개정 때 처음 들어갔다. 김 교수는 “기업도 일종의 헌법기구이며, 헌법이 기업의 지위를 높이 인정해준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19조1항과 2항 간 우선순위를 놓고도 말들이 많지만 그는 ”자유와 창의존중이 경제의 기본원칙”이라며 “이로 인한 사회적 해악이 발생할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도록 119조2항(시장지배와 경제력남용 방지조항)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정치권의 영입 제안이 없었을까. 김 교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회의가 있어서 들어갔더니 “같은 동네(상도동) 살면서 왜 안 도와주냐”며 화를 내더라는 일화를 전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