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에 남아 있는 일감은 건조 중인 군함 1척이 전부다. 회사 측은 생산직 근로자 700명 가운데 2014년 상반기 인도 예정인 이 배 건조에 200여명을 투입한다. 남은 500여 근로자는 모두 유급휴직 중이다.

92명의 정리해고 근로자는 9일 원래 근무처로 복직발령을 받았어도 일감이 없어 곧바로 순환 휴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회사 측은 생산직 10년차 근로자 기준으로 한 달에 기본급 200만원가량을 준다. 정치권이 1년9개월여를 밀어붙여 이뤄낸 정리해고자 복직의 성과다.

○정리해고자 전원 복직

정리해고 철회에는 외부 세력의 개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1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 크레인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이후 운동권 세력이 개입해 ‘희망버스’를 기획하면서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출발한 1차 희망버스가 인기를 끌자 2차 희망버스부터는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 등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그해 7월 출발한 2차 희망버스 참가자는 7000여명에 달했다.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 300여명이 ‘참희망버스’를 조직해 희망버스를 저지하면서 갈등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결국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청문회에 출석시켜 질타했다. 조 회장이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그해 10월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또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조 회장은 복직을 시키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한진중공업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영도조선소 생산직 400명을 희망퇴직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은 2010년 12월이었다. 400명 가운데 306명은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고 94명은 응하지 않았다.

○노동 유연성 제약 선례되나

한진중공업은 92명의 근로자들은 ‘복직’이 아닌 ‘재취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고자 전원이 경력 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복직이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복직 조치는 정리해고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애당초 정리해고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판단으로만 놓고 보면 타당한 조치였다는 게 조선업계의 중론이다. 조선업 불황과 필리핀 수빅조선소로의 생산기지 이전으로 인력 줄이기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영도조선소는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상선 부문에서 2년 넘게 일감을 수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재고용을 정치권의 압력 등에 굴복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쌍용차 정리해고나 현대차 비정규직 전환 등 다른 노동 이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은 이미 쌍용차 정리해고 농성자들을 만나 국정조사를 약속하는 등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역시 정치 논리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에서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제2의 희망버스를 조직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은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인력 등의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면 전체 근로자가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 유연성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욱진/양병훈/김대훈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