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국장, 자서전 써준 작가와 외도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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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미국의 안보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미국의 전쟁영웅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중앙정보국(CIA) 국장(60)이 연방수사국(FBI)의 조사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드러나 9일(현지시간) 사임했다. 상대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20년 후배이자 자신의 전기를 집필한 폴라 브로드웰.
두 사람은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총 3개월간 수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 내연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퍼트레이어스 국장은 플로리다에 사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여인과도 깊은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
○삼각관계로 시작된 FBI 조사
퍼트레이어스 국장에 대한 수사는 플로리다의 여인이 FBI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역시 퍼트레이어스 국장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여인은 몇 달 전 브로드웰이 그와의 관계를 캐묻는 위협적인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자 깜짝 놀라 FBI에 신고했다. FBI는 이메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브로드웰이 알 수 없는 비밀 정보가 포함돼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브로드웰이 퍼트레이어스 국장의 개인 이메일을 해킹했는지 여부로 수사를 확대했다.
수사 결과 해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이 이메일 비밀번호 등을 공유했지만 국가 비밀과 관련해 불법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수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두 사람의 불륜 사실만 드러난 셈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책상 밑에서 성관계를 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퍼트레이어스 국장은 FBI와의 면담에서 불륜 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하루 만에 사의를 받아들였다. 퍼트레이어스는 이날 CIA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37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외도를 저지르면서 극도의 판단력 부족을 드러냈다”며 “이런 행동은 남편으로서는 물론 조직의 지도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밝혔다.
○가장 존경받던 전쟁영웅의 몰락
퍼트레이어스 국장은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군에 포함될 정도로 명망이 높은 군인이었다. 1975년 웨스트포인트를 상위 5%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졸업 2개월 만에 당시 육사 교장이던 윌리엄 놀턴 장군의 딸과 결혼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7년 초부터 이듬해 9월까지 이라크 주둔 사령관을 지냈다. 이라크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민심을 얻는 새 전략으로 미국과 이라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0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을 지냈으며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한·미동맹 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보국훈장 최고등급인 통일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CIA 국장에 선임했다.
퍼트레이어스의 내연녀인 브로드웰 역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군인 출신. 이후 하버드대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공공리더십센터 연구원으로 재직해왔다.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기관총 제조회사 모델로 활동할 만큼 미모를 갖췄다.
두 사람은 2006년 처음 만났고 퍼트레이어스 국장이 브로드웰의 대테러 관련 연구를 도와주면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브로드웰은 퍼트레이어스를 자신의 멘토라고 불러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방사선 전문의인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퍼트레이어스 국장의 아내인 홀리 퍼트레이어스도 펜실베이니아주 디킨스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다. 그는 오바마 정부가 금융개혁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을 설립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 이곳에서 군인 가족들의 금융 문제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일각선 정치적 음모론도 제기
FBI가 민감한 사안을 수개월 동안 조사하면서 상부나 의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놓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음모론도 제기하고 있다. FBI는 CIA와 오랜 라이벌 관계다.
FBI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적이던 대선 당일 저녁에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 국장에게 공화당 계열인 퍼트레이어스 국장의 불륜 사실을 보고했다.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마이클 로저스 의원은 “지난 주말에야 클래퍼 국장에게 보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 투성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