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계에 ‘최고경영자(CEO) 불륜 경계령’이 떨어졌다. 미 중앙정보국(CIA) 수장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국장과 미국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의 크리스토퍼 쿠바식 최고경영자(CEO) 내정자가 지난 주말 혼외정사, 부하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각각 사임, 낙마한 게 계기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현지시간) 사생활 또는 윤리 문제로 중도 하차하는 CEO들이 수년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여성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거짓말, 공금횡령 등으로 물러난 CEO의 면면을 보도했다. CEO의 ‘사생활 리스크’가 기업의 또 다른 경영 리스크로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부하 여직원에 눈길도 주지 마라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쿠바식 내정자의 중도 하차에 대해 “CEO 섹스 스캔들의 ‘명예의 전당’ 회원이 더 늘어났다”고 꼬집었다. 차기 CEO로 내정된 쿠바식 부회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여성 부하직원과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회사 윤리규정을 위반했다.

록히드마틴의 경쟁사인 보잉 역시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2005년 3월 68세이던 해리 스톤사이퍼 보잉 CEO가 20세 연하의 여성 임원과 혼외관계를 가져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고됐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의 브라이언 던 CEO도 마찬가지. 고졸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주목받은 그는 지난 4월 29세 여직원과의 로맨스가 들통나면서 쌓아온 명예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올해 초 미국 의료기기 제조업체 스트라이커의 스티븐 맥밀란 CEO는 회사 전용기 승무원과의 부적절한 관계와 이혼 소송 문제로 이사회 신임을 잃으면서 결국 회사를 떠났다.


◆거짓말, 폭행, 공금횡령까지 한다

2007년 5월 영국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석유업체 BP를 12년간 이끌면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혔던 존 브라운 CEO가 거짓말쟁이로 몰리며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 브라운은 그의 사생활(동성애)을 폭로하려는 언론을 막기 위해 법정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짐을 싸는 신세로 전락했다.

케이블 영화전문채널 HBO의 크리스 알브레히트 전 CEO는 2007년 5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주차장에서 여자친구를 폭행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HBO의 모회사 타임워너는 그를 바로 해고했다. 알브레히트는 “13년간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면서 주벽이 도졌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2005년 토머스 콜린 전 월마트 부회장은 회삿돈 50만달러를 승용차, 애완견, 옷 구입 등 개인 용도로 쓴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CEO의 사생활은 ‘경영 리스크’

마크 허드 전 HP 사장(현 오라클 사장)은 2010년 8월 마케팅 대행업체 여사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변심한 이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소하자 회사 측이 조사에 착수했다. 허드는 사내 성희롱 내규를 위반하지 않았지만 공금 유용 등 기업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당시 허드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HP는 주가가 10% 이상 폭락하는 등 큰 위기를 맞았다. 새로 선임된 CEO가 10개월 만에 다시 교체되는 등 경영 불안이 지속됐다.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의 전직 임원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트립클럽에서 회사 신용카드를 쓰고 심지어 여성을 사무실에까지 부르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