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중량화물선 ‘현대마산’호가 경남 마산항에서 작업 중이다. 선박에 달린 크레인이 항구에 있는 500 무게의 발전기를 번쩍 들어 선박에 내려놓았다. 크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선박도 파도와 함께 춤을 췄다. 그 육중한 발전기가 선박에 놓이자 이번엔 크레인을 묶는 작업이 이어졌다. 마산에서 최종 목적지인 중동 아부다비까지 가는 1차 선적 작업이 겨우 마무리됐다. ‘휴~~~~’ 이제 겨우 선적을 마쳤을 뿐인데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리곤 중동의 고객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출항시간을 알렸다.

인터뷰에 나온 현대상선 11개월차 신입사원 김혜린 씨(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졸·25)는 올봄 자신의 ‘첫 작품’을 떠올렸다. “아직도 그때의 감격과 긴장을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중량화물 벌크선과 20대 여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였지만 김씨는 입사 11개월 만에 멋진 조화를 이뤄냈다. “프로젝트화물 영업팀으로 발령받은 초기였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해외 고객이 영업 담당자를 바꾸라는 거예요. 제가 담당자라고 했더니 믿질 않더라고요. 사실은 저희 동기생 절반 이상이 여자인데 말이죠. 그런데 놀라운 건 이젠 그 고객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까지 알 정도로 친해졌다는 사실이에요.”

지난 8일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날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빌딩 동관 2층 접견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외모는 가냘펐지만 목소리는 씩씩했다. 결단력도 있어 보였다. “6년 전 수능 후 대학 두 곳에 합격했어요. 부모님은 제게 어딜 가라고 한마디도 안 하시고 오직 저의 결정을 믿어주셨죠.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신 거죠. 이런 믿음이 지금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돼요.”

김씨는 현재 현대상선 프로젝트 영업팀에서 중량화물 벌크선을 맡고 있다. 벌크선은 컨테이너선과는 달리 포장되지 않은 곡물, 광석, 장비 등을 운송하기 때문에 업무가 까다롭고 힘들다. 이런 거칠고 막중한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배낭 하나 메고 20개국 여행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해운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해외출장길에 우연히 동행하면서 꿈이 시작됐다.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들과 만나 영어로 대화하는 아버지를 통해 감동을 받았어요. 매일 바쁘기만 하셨던 아버지가 이해되면서 나중에 나도 아빠처럼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해외여행을 통해 외국어의 중요성을 알게 된 김씨는 자연스레 영어 공부에 흥미를 가졌다. “외국에서 영어를 못하면 화장실이 어딘지도 모른 채 헤매더라고요. 그래서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억양과 발음을 흉내 내면서 혼자 연습했습니다. 공부하기를 강요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그의 입사지원서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외교통상부 인턴, 미국 해군 장군 의전과 통역, 인도와 스페인에서의 유네스코 봉사 활동에 성적우수 장학금과 동문추천 장학금까지 받을 만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무 살 때부터 배낭 하나 들고 혼자 전 세계 20개국을 여행한 강심장도 지녔다. “한번은 베트남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여자애가 혼자서 그런 오지를 가냐’며 ‘한번 더 나가면 다신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래도 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김씨는 1학년 겨울방학 때 첫 인도 배낭여행의 추억을 꺼냈다. “버스 옆으론 코끼리가 지나가고 길거리에 널린 소똥으로 가방은 엉망이 됐죠. 또한 며칠 동안 삼시 세끼

카레를, 그것도 손으로 떠 먹기도 했고요.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 아니라 모든 게 ‘프라블럼’이었어요. 그래도 기회만 있으면 또 배낭을 들었습니다.” 김씨는 그때의 여행이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어줬다고 했다. “수많은 외국인을 사귀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혔어요.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와 다른 문화, 생각을 수용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행복 나르는 ‘민간외교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인터뷰 동안 김씨의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렸다. 입사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샛별’ 같은 존재가 됐다. “해외의 화주들과 전화와 이메일로 24시간 연락해요.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이메일 확인입니다.” 프로 같지만 그녀도 실수를 통해 성장했다. “입사 초기에는 화물 선적의 기초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쏟아지는 화주들의 요청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준비된 화물의 포장불량으로 인해, 선적 도중 화물의 일부분이 떨어지면서 배 천장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죠. 그때 얻은 제 별명이 '천장 구멍 낸 여자' 였어요. 물론 지금은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지만 그땐 수습하느라 진땀 뺐죠.”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리는 김씨가 해운업을 택한 것은 운명이었다. “짧았지만 2개월간 해운회사 인턴을 했어요. 해운업만의 매력에 푹 빠졌죠. 항공모함처럼 거칠고 무거운, 남자들만 가득한 곳에 뛰어들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턴 기회를 준 해운사를 제쳐두고 굳이 현대상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고를 지향하는 현대상선이 마음에 들었어요. 업무가 체계화된 컨테이너보다는 벌크선 분야에서 제 꿈을 펼칠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선적부터 양하(화물을 본선에서 내리는 작업)까지 모든 업무를 기획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에요. 도전 의식을 불태우거든요.”

그는 입사지원서 작성으로 현대상선을 향한 첫 도전을 시작했다.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마침표는 어디에 찍어야 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어요. 2400자로 제가 살아온 일생을 보여줘야 하는데 다른 글을 복사해서 붙일 수는 없었죠. 창피했지만 주변 선배, 동기들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어요. 그렇게 100번의 퇴고 끝에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자기소개서를 완성했어요.”

면접 준비도 철저했다. “인터넷에 있는 면접 후기를 다 읽고 예상 질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제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했어요. 업황부터 사장님 성함까지 파악했죠. 면접 땐 벌크영업에 대한 소신을 밝혔더니 면접관들이 놀라는 것 같았어요.”

김씨의 꿈은 뭘까. “신입사원 사령장을 받을 때 이석희 사장님이 그러셨어요. ‘해운업은 어떤 산업보다 글로벌한 분야로 인생을 한번 걸어볼 만한 곳’이라고. 현대상선이 5대양6대주로 나르는 컨테이너, 석유, 철광석, 석탄이 어떤 이들에겐 따뜻한 온수와 난방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오늘도 그들에게 행복을 실어나른다는 마음으로 일해요. 지금은 날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5년 남짓된 중량화물 사업을 키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꿈을 꿔요.”

공태윤 기자/노윤경 한경잡앤스토리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