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형씨 사법처리 방향, 쉽게 결론 못 내려
특검서 바꾼 진술 신빙성 판단이 관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의혹 사건을 파헤쳐 온 이광범 특검팀이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부지매입 명의자인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의 사법처리 방안을 두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특검팀 내부에서도 법리적 판단을 놓고 일부 견해가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시형씨에게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또는 증여세 포탈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시형씨는 애초 검찰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이 대통령이 알려준 방법대로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6억원을 현금으로 빌리고 모친 김윤옥 여사 명의의 서울 논현동 땅을 담보로 6억원을 대출받아 부지 매입자금을 마련했다고 진술했다.

또 먼저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산 다음 1년 정도 후 이 대통령에게 되팔아 큰아버지에게서 빌린 돈과 대출받은 돈을 갚을 생각이었고 부지매입 실무를 김세욱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일임해 자신은 계약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진술대로라면 시형씨는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 거의 확실하다는 게 법관들의 판단이다.

현직 고등부장판사 A씨는 "기존 답변은 사실상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을 자백한 것"이라며 "더구나 아버지와 합의한 것임을 자백했는데 그렇다면 아버지도 자백한 것이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부장판사 B씨도 "검찰에 진술한 것처럼 아버지가 알려준 방법대로 돈을 마련해 먼저 자기 이름으로 등록하고 나중에 아버지 이름으로 바꿀 생각이었다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 확실하다"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이 퇴임 후 본인이 소유하고 거처할 사저부지를 아들인 시형씨 이름을 빌려 사들이는 형태의 명의신탁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특검팀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수탁자인 시형씨는 물론 신탁자인 이 대통령도 처벌 대상이 된다.

물론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소는 불가능하다.

부동산 실명제법은 명의신탁자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 명의수탁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시형씨가 특검 조사에서 기존 검찰 진술을 번복해 사정이 달라졌다.

시형씨는 지난달 25일 특검 사무실에 출석해 자신이 실제 소유할 생각으로 내곡동 땅을 샀고 큰아버지에게 빌린 돈은 당장 갚을 능력이 없어 천천히 갚을 생각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시형씨 측은 진술을 바꾼 이유에 대해 검찰에 낸 진술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대신 작성한 것을 대충 검토하고 제출해 내용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번복한 진술대로 실제 소유주를 시형씨로 본다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특검팀은 편법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시형씨에게 증여세 탈루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조세범처벌법 21조(고발)에 '이 법에 따른 범칙행위에 대해서는 국세청장 등의 고발이 없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돼 있어 특검팀의 직접 기소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특검팀이 편법증여로 결론을 내린 뒤 국세청에 증여세 탈루 혐의를 통보하는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추징세액이 5억원 이상이면 조세범칙심의회에 회부해 형사고발이 가능하다.

조세범처벌법은 정상에 따라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도록 했다.

법조계에서는 시형씨가 번복한 진술의 신빙성이 얼마나 인정받는지, 특검팀이 시형씨의 바뀐 진술을 반박할 증거를 어느 정도 확보했는지에 따라 특검팀의 판단이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B 부장판사는 "시형씨의 진술이 왔다갔다했기 때문에 진술만으로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증거로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다만 시형씨가 진술을 번복한 만큼 그 진실성은 의심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시형씨 측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A 고등부장판사도 "기존 검찰 서면답변이 있어 진술의 신빙성을 상당히 의심받을 텐데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진술서를 대신 작성한 청와대 행정관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은 점도 시형씨 측에는 불리한 정황으로 지적된다.

특검팀은 시형씨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그가 이 회장 자택을 방문해 돈을 빌렸다고 진술한 지난해 5월24일 행적을 추적한 결과 기존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 몇 가지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산되면서 핵심 증거물인 시형씨의 차용증 원본파일을 찾아내지 못했고, 시형씨에게 현금 6억원을 직접 담아줬다는 이 회장 박모씨도 참고인 조사에 불응하고 있다.

특검팀은 결국 제한된 진술과 증거만으로 시형씨의 사법처리 방안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