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라이프치히 공장은 독일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생산 시설 중 하나다. 2005년 설립된 독일 내 최신생 차 공장인 이곳은 첨단 설비와 함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1가지 건축물’과 같은 버킷 리스트에 들 정도로 현대적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자동차 업계가 이곳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고용 구조에 있다. 전체 5500명 직원 중 35%인 1900여명이 파견 근로자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다. 독일 자동차 공장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독일 자동차 업계 평균(10%대)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단순히 수치만 높은 게 아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공장이 초창기에는 정규직 위주로 운영하다가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데 비해 이 공장은 아예 첫 가동 때부터 비정규직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고용 패턴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톡톡히 빛을 봤다. 좌파성향의 노동사회학자인 하요 홀스트 프리드리히 실러대 교수조차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유로운 인력 조정으로 독일 자동차 업체 중 가장 효과적으로 비용을 감축한 공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BMW 라이프치히 공장은 독일 제조업체의 노동 유연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독일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폭스바겐 인사담당 임원 출신인 페터 하르츠가 중심이 된 노동시장 개혁위원회의 ‘하르츠 개혁’을 통해 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의무 기간을 폐지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 추진했다. 통일 독일 후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고임금·저근로 시간 등의 탓으로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한때 ‘유럽의 병자’로까지 추락했던 독일이 유로존 위기의 최고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노동시장 유연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일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이 100% 출자한 인력 제공 업체 ‘아우토비전’도 독창적인 모델이다. 자동차 업체가 별도 자회사로 인력 업체를 운영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우토비전은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독일 내 21곳에 지사를 운영하면서 폭스바겐, 아우디 등 폭스바겐그룹에 1만4000여명의 파견 및 도급직 근로자를 공급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아우토비전의 관계를 프로야구에 비교하면 흡사 1군과 2군격의 역할에 가깝다. 폭스바겐 근로자가 경기 악화로 생산량이 줄거나 개인적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되면, 아우토비전으로 옮겼다가 상황이 좋아졌을 때 폭스바겐이나 같은 계열의 아우디 등에서 다시 일할 수도 있는 구조다.

아우토비전 사업장평의회의 알리 나히 의장은 “폭스바겐이 아우토비전을 두게 된 것도 결국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실업자를 줄일까 하는 고민의 결과물”이라며 “경기 상황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유연성이 최고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강성 노조의 영향으로 한 공장 내에서 라인 간 전환배치도 거의 불가능한 데 반해 독일에서는 회사 간 전환배치까지 이뤄지고 있다. 회사 간 협약을 통해 업종별 경기 상황에 따라 근로자들이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어 트럭업체인 MAN과 고속철 및 발전장비 회사인 알스톰의 독일 지사 간에는 인력 구조조정시 상대방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협약을 맺고 있다. 이 같은 협약이 맺어진 곳은 브라운슈바이크에 10개사를 비롯해 하노버에 9개사, 괴팅겐에 4개사 등이 있다.

독일 니더작센주 사용자협의회(경총)의 노르베르트 라이너스 부회장은 “독일은 1990년대 말 이후 제조업체들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안들이 고안됐다”며 “유연성을 높여 위기시에는 기업 부담을 줄이고, 호황시에는 정규직의 숙련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하노버·볼프스부르크=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