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충청권과 강원권의 지방은행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14년간 이어져온 지방은행 판도에 변화가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 대구 경남 광주 전북 제주 등 6개 지방은행 구도는 1999년 이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대선 정국을 계기로 충청도와 강원도 등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지역 내 상공인들까지 나서 지역 은행 설립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타진해 옴에 따라 금융당국도 신규 지방은행 설립이 필요한지 여부는 물론 설립 시 미칠 영향 등에 대한 내부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충청·강원권 “대선 뒤 본격 추진”

지역을 대표하는 은행이 없는 강원도와 충청도는 시중은행들의 격전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1999년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이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합병된 이후 지역 내에선 은행 설립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계속돼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은행 설립 논의는 최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캠프가 강원·충청은행 설립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면 설립추진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마련될 것으로 안다”며 “지방은행이 생기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충북·대전시·세종시 등 4개 시·도의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대전 지역의 자금유출비율이 40%에 육박하는 만큼 은행이 생기면 지역 내 유동자금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4개 시·도의 경제인 모임인 ‘충청권 경제포럼’이 지방은행 설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분위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중기·상공인 자금난에 숨통”

지역에서는 중소기업과 상공인들의 자금난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서라도 지역은행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여신운용규정에 따르면 지방은행은 매년 신규 대출증가분의 60% 이상을 의무적으로 해당 지역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의무비율은 40%에 불과하다. 여기에 지방은행 설립으로 세수가 증가하고 고용이 창출되는 등 지방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지자체와 상공인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시중은행이 영업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지방은행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결국 신규 지방은행 설립을 위한 출자자와 자본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 금융권에서 가장 강력한 건전성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권에 신규로 진출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설립까지 ‘산 넘어 산’

충청·강원지역에서 지역 내 자본만으로 충분한 자본금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은행법에 따르면 지방은행의 최소 납입자본금은 250억원이다. 하지만 전산설비와 점포 등 물적·인적 기본요건을 갖추려면 이보다 10~20배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경쟁관계인 대구은행과 부산은행이 한때 높은 전산시스템 운영비용을 절감하자며 공동 전산센터 설립을 추진했을 정도로 전산 등 기초 시스템 구축과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든다”며 “소규모 지방은행이 정보기술(IT) 설비와 보안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한도를 규정하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지역은행에 출자할 금융자본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상공인 및 지자체 등이 출자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에서는 비금융주력자 규제를 피하면서 지역 내에서 충분한 자본금을 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지난달 강원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강원도의 경제 규모가 취약하고 자본력이 부족한 만큼 여건이 더 성숙된 뒤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류시훈/이상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