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신한금융그룹 전 회장(74·사진)이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법원 출석을 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설범식)는 14일 “라 전 회장이 신한은행 사건에 따른 충격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치료 중이라는 이유로 불출석했다”고 전했다. 그는 신한금융 전 임원진의 횡령 및 부당대출 의혹에 관한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됐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뇌질환이다.

라 전 회장은 선린상고를 나와 약 20년간 금융권의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일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59년 농업은행에 입사한 뒤 대구은행 등을 거쳐 1982년 신한은행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1991년부터 8년간 신한은행장을 맡았다. 신한은행 부회장을 거쳐 2001년 신한금융지주 설립과 동시에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2010년 9월 이른바 ‘신한금융 사태’를 계기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백순 당시 신한은행장(60)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64)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 발단이었다. 신 전 사장은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의 경영 자문료 명목으로 회삿돈 약 15억6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이 전 행장은 이 중 비자금 3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각각 기소됐고 이후 2년 넘게 법정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라 전 회장은 기소를 면했으나 명예회장 자문료 명목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한 사태를 전후해 금융권에서는 라 전 회장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라 전 회장의 한 지인은 “옛날 기억은 잘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들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할 때가 있는 등 기억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신한금융지주의 한 사외이사는 “신한 사태가 터진 직후부터 라 전 회장이 초기 치매를 앓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많은 신한 사람들이 매우 가슴 아파했다”고 말했다.

라 전 회장은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최측근들과 간혹 골프라운딩을 즐길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선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심공판은 12월3일 열릴 예정이다.

이상은/이고운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