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일본 와세다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우노 다카시(宇野隆史)는 전공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같은 과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은행에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우노는 어묵집을 하고 싶었다. 자주 다니던 도쿄 시모키타자와에서 어묵집을 하던 부부를 보고 요식업이 유망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부부는 어묵을 팔아 1년에 한 달가량은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창업을 위해 대학을 중퇴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우선 커피원두 판매회사에 들어갔다. 이후 커피숍 등을 운영하다가 1978년 라쿠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당시에는 도쿄에 5평짜리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를 세운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쿠코퍼레이션은 도쿄의 ‘구이모노야 라쿠’ 본점을 비롯해 수도권에 약 20개의 점포를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라쿠코퍼레이션에서 일하다가 독립해 다른 가게를 차린 경영자가 300명이 넘고, 이들이 키운 음식점 사장들이 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라쿠코퍼레이션의 경쟁자들이지만 모두 우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일본 외식업계 전문잡지인 ‘닛케이레스토랑’은 우노 사장을 ‘이자카야(居酒屋)의 신(神)’이라고 표현했다.

◆“요식업은 손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요식업은 흔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사업으로 치부한다. 그만큼 실패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노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음식점이야말로 잘만 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업종이라고 봤다. 100엔짜리 토마토가 인근 이자카야에서 썰기만 하면 300엔이 된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가격이 세 배가 된 토마토를 싸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우노는 차액 200엔이 ‘손님에게 즐거움을 준 대가’라고 여겼다. 결국 음식점의 성패는 손님을 미소짓게 하는 가게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떤 서비스가 손님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우선 직원들에게 손님의 이름을 외우라고 강조했다. 손님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면 가게 호감도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잘 못외우는 직원들을 위해 손님들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 테이블 번호표를 두고 손님 이름을 모두 써놓기도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름 부르는 작업을 진행한 이후 두 달 만에 라쿠코퍼레이션의 월 매출은 150만엔가량 상승했다.

단골 손님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노력도 병행했다. 손님들이 야키소바 3인분을 시켰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표고버섯을 싫어했다는 것을 미리 기억해 뒀다가, 1인분은 표고버섯을 빼고 요리를 제공하는 식이다.

손님들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처럼 손님이 몰려 주문한 요리가 늦게 나가는 경우가 많을 때 직원들에게 테이블을 지나면서 “안 나온 음식이 있나요?”라고 꼭 물어보도록 했다. 고객 불만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다. 만약 음식이 제때 나오기 힘든 상황이면 바로 대접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제공하도록 했다. 고객들이 ‘마음속에 품고 돌아가는 불만’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노 사장은 손님 접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짚신 이야기’에 비유한다. 일본 전국시대의 명장 오다 노부나가의 시종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추운 겨울 짚신을 가슴에 품은 뒤 따뜻하게 만들어 오다의 환심을 샀다는 내용이다. 우노는 이 같은 노력으로 출세길이 열린 도요토미처럼 음식점도 고객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줘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범한 음식을 특별 메뉴로 바꾼 아이디어

라쿠코퍼레이션이 단순히 고객 접대로만 승부한 것은 아니다. 우노는 이자카야에 특별한 요리 기술까지 필요하진 않지만,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새끼 방어를 회로 친 메뉴를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 요리사가 없어 깔끔하게 회를 뜰 수가 없었다. 그는 대신 이 회를 ‘대충 썰어 더 맛있는 회’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 손님들은 이런 시도를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기꺼이 주문했다. 더운 여름에 인기없는 어묵요리는 ‘참 신기하죠. 여름에도 인기있는 어묵’과 같은 문구가 담긴 메뉴판을 사용했다.

가게의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를 높이는 데도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이자카야에 오는 여성 고객의 85%까지 푸딩과 아몬드 젤리를 넣은 디저트를 주문하도록 유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디저트 한 개의 가격은 300엔으로, 손님들이 주문하면 그만큼 객단가를 높일 수 있다. 그는 손님에게 디저트를 제공할 때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같이 주기로 했다. 점원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손님 자리에 가져가 그 자리에서 퍼 줬다. 손님들은 아이스크림을 받을 때 마치 굉장한 횡재를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옆 테이블 손님이 디저트를 먹는 모습을 보고 디저트를 주문하는 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경기에는 닭튀김이나 고로케처럼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음식메뉴를 전면에 내세웠다. 낯선 메뉴는 미래가 불확실한 불경기에 손님들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아이디어가 평범한 음식을 특별한 메뉴로 바꾼 비결이다. 아이디어의 단서는 TV광고, 맛집 프로그램, 책 등 일반 유행 정보에서 찾았다. 때로는 직접 맛있다는 평판이 나 있는 다른 가게를 찾아갔다.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를 모방한 뒤 변형시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가게 위치는 핑계일 뿐…“이웃 공급처가 중요”

우노 사장은 신규 점포를 낼 때 가게의 입지 조건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가게 주인의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통한 단골 고객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주변이 주거지역이어서 영업에 방해되지는 않는지, 점포가 두 개로 나뉘어져 주인이 손님의 얼굴을 보기 어려운지 정도만 살폈다.

대신 생선 야채 식기 등을 조달하는 지역 이웃들과의 친분을 중시했다.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가 가능해 쌍방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예를 들어 가게에 접시가 20개 필요하면 거래처에 4번에 걸쳐 5개씩 샀다. 여러번 방문해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다. 가게가 커지자 더 싸게 공급하겠다는 거래처도 생겨났다. 하지만 우노는 기존 거래처를 계속 유지했다.

라쿠코퍼레이션의 각 점포 점장들은 이런 우노 사장의 철학에 따라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올라온 사람들이다. 점장 이후 더이상 승진할 자리가 없는 이들은 자연스레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된다. 우노는 이들의 독립을 막지 않았다.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업자들에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라고 강조한다. 일하면서 수시로 자신이 만든 가게의 매출이 얼마나 늘어야 어느 정도의 자동차와 집을 살 수 있고, 주말에 골프를 칠 수 있다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꿈을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고, 자신의 목표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