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경험하면서 국내 전력 수급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 설비는 화력발전 비중이 65.3%로 가장 높다. 다음이 원자력으로 31.1%다. 화력발전소의 경우 20만~50만㎾ 용량의 발전기 5~8개로 운영하는 데 비해 원자력발전소는 100만㎾급 발전기 4~6개로 구성된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가 고장날 경우 전력수급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전 정비, 한파로 전력공급 차질 우려

문제는 전체 23기 원전 중 고리 3호기, 영광 3호기, 울진 4호기, 울진 6호기 등 4기가 예방정비를 받고 있으며, 월성 1호기는 고장으로 멈춰섰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원자력 발전소 위조 부품 공급 파동으로 발전용량이 각각 100만㎾급인 영광 5·6호기 가동마저 중단됐다.

문제 부품 교체작업으로 영광 5호기는 내달 5일부터, 6호기는 연말쯤이나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달 23일 계획예방정비를 마치고 정상 운전에 돌입할 계획이던 영광 3호기에서 원자로헤드 관통관에 균열이 발견돼 정비 기간이 다소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정비에다 겨울철 추위로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경우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최근 기상청이 발표한 3개월 전망 자료에 따르면 올겨울에는 예년에 비해 매서운 한파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올겨울 한파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내년 1월의 최대 전력수요 예상치는 지난해보다 635만㎾ 증가한 8018만㎾에 이를 전망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 11~12월 중 예비 전력은 275만~540만㎾ 수준이다. 그러나 내년 1월과 2월에는 예비 전력이 급감, 230만㎾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로 비교해봐도 앞으로 전력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연평균 1.9%, 최대 전력수요 2.8% 증가를 고려해 발전설비 용량을 계획했다. 그러나 실제 전력 수요는 정부 예측치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올여름 전력예비율이 역사상 최저치까지 급락했던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력 수요와 공급을 고려할 때 전력난은 올겨울과 내년 여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가 쓸 수 있는 전력수급 단기대책은 절전 및 수요관리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용 자가발전기 활용과 함께 오성LNG복합발전소(83만㎾) 등의 가동을 앞당기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전력수요 확대와 성수기 진입으로 인해 계통한계가격(SMP)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SMP는 거래시간별로 일반발전기(원자력, 석탄 외의 발전기)의 전력량에 대해 적용하는 전력시장가격(원/시간당 ㎾)을 말한다.


○전력수요 해갈 위한 가스발전 늘 듯

국내 전력수요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난방기구, 에어컨 등 전기를 많이 쓰는 제품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전력산업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우리나라는 비록 GDP 증가율이 2% 수준이지만, 전력수요는 배 이상 늘고 있다.

전력수요 증가율을 연평균 얼마로 볼 것인가에 따라 신규 증설해야 하는 발전 용량이 달라진다. 올해 말 설비기준으로 최대시간 전력수요 증가율을 4%로 가정하면 2020년까지 3만2000㎿, 2025년까지 5만8000㎿의 발전설비 증설이 각각 필요하다.

이에 따라 6차 전력수급계획은 5차의 원전 일변도에서 2015년 이후 가스와 석탄 비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방향으로 수정될 전망이다. 연간 4%의 전력수요 증가율을 적용하면 2020년까지 LNG복합화력발전 건설에 약 12조원(1만㎿), 석탄발전에 대략 15조원(5000㎿), 원자력에 20조원(5000㎿)가량을 각각 책정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2025년까지로 보면 3만4000㎿가 필요하다. 전력예비율을 더 높게 가져갈 계획이라면 더 많은 용량의 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

공급측면에서 보면 원자력 발전이 발전기 1기당 100만㎿급이어서 가장 효율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원전 사태 이후 국민의 원전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이 심해짐에 따라 계획대로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15년부터 한국에서 증설되는 발전원(源)은 모두 원자력이다. 석탄과 LNG 발전은 2015년부터는 신·증설 계획이 없었다. 이 같은 원전 중심의 제5차 전력수급계획은 원전 발전량 중 일정 비율이 석탄과 천연가스로 이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원전이 완전히 다른 발전원으로 대체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발전 단가가 가장 낮은 원전이 발전원에서 사라질 경우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신 ‘제2의 석유’로 불리는 ‘셰일가스’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LNG 복합화력발전소를 통한 전력 생산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인도 대규모 정전사태 이후 인도, 베트남 등의 국가에선 발전소 건립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은 전력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Value3@hi-i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