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이하의 전기료는 국가적인 에너지 낭비를 초래합니다. 전기료가 너무 싸다 보니 석유·가스 대신 전력 중심의 에너지 구조가 만들어지고,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 연료인 석유·가스를 더 수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한국전력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박규호 기획본부장(사진)은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이 에너지 소비구조의 왜곡을 불러옵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장 국민과 기업은 낮은 전기요금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기 위해 더 많은 외화를 쏟아부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경제로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원가를 밑도는 전기료 때문에 한전은 2008년부터 작년까지 내리 적자를 냈다. 4년 누적 적자는 8조1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재무관리를 책임지는 박 본부장의 어깨가 최고경영자(CEO) 못지않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본부장은 “만성 적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전기료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실적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년에 비해 적자폭은 줄어들겠지만 적자를 면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발전회사에서 비싼 가격으로 전력을 구입해 싼 가격에 파는 기형적인 사업구조 때문에 상반기에만 4조3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상반기 동안 발전회사에서 ㎾h당 103원에 전력을 구입해 94원에 판 셈입니다. 전력판매량이 늘수록 손실이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정상적인 기업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작년 12월과 지난 8월 잇따라 전기료를 올리지 않았습니까.

“작년 12월에 4.5%, 8월에는 4.9% 인상했지만 아직 전기료는 원가의 90%에 불과합니다. 원가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발전비용, 즉 한전이 통제할 수 없는 발전자회사의 연료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국제유가 등 연료비 상승요인을 반영하기 위해 앞다퉈 큰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17~35% 인상하겠다고 했고, 일본과 호주는 올해 각각 17%, 18% 인상했습니다. ”

▶올해 전기료 인상 과정에서 정부와 마찰을 빚었는데요.

“언론에선 한전이 정부에 대립각을 세웠다고 표현했지만 약간 오해가 있습니다. 기업으로서 한전의 존립이 어렵다는 위기감을 전달한 수준이었습니다. 어느 CEO가 1~2년도 아니고 4년이 넘게 지속되는 적자를 가만히 두고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전이 많은 흑자를 내지도, 그렇다고 적자를 내지도 않는 적정한 수익만을 보장받겠다는 안을 제시한 것이지요. 당초 한전이 주장했던 16.8%는 누적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올해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재무구조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입하는 도매가격에는 연료비 변동분이 모두 반영됩니다. 반면 한전이 소비자에게 전기를 팔고 받는 요금은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연료비 상승으로 인한 원가부담이 모두 한전에 전가되는 상황입니다. 2005년과 비교하면 작년까지 전력구입비는 55% 치솟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20%에 그쳤습니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평균 원가회수율은 87%에 불과하고 이에 따른 부족액은 22조원이 넘습니다.”

▶발전자회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되지 않을까요.

“과거엔 100% 자회사인 발전자회사에 대해 한전이 사장선임권, 경영평가권, 예산승인권을 가지고 통제했지만 지난해 발전자회사들이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되면서 감독권이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한전은 더 이상 자회사인 발전자회사 경영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발전자회사 스스로가 고강도 경영혁신을 해야만 모회사인 한전의 재무구조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대규모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2007년 15조원이 안되던 차입금이 불과 4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해 작년 말 30조원을 넘었고 올 상반기에 다시 35조원까지 증가했습니다. 원금이나 이자를 갚기 위해 차입을 계속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지난해 이자비용만 1조4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이자비용 증가도 전기요금 산정 시 원가에 반영돼 전기료 인상요인이 됩니다. 재무구조 악화로 최근 인도네시아와 이집트 발전사업 입찰에선 자격 미달로 탈락하는 등 피해도 적지 않습니다.”

▶한전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억울한 얘기입니다. 상반기 기준으로 총 비용 중 한전이 통제할 수 없는 전력구입비(90.5%)와 감가상각비(4.7%) 등 절감이 불가능한 비용은 95.5%에 달하고, 관리 가능한 비용은 4.5%에 불과합니다. 한전 전체 직원의 인건비는 6000억원 수준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전 직원이 임금을 반납해도 올해 전기요금 인하요인은 1.3%에 그칩니다. 한전은 자회사 지분 매각 등 자구노력과 원가절감 등을 통해 2008년부터 작년까지 2조6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올해도 비상경영 3단계를 실시하며 5000억원의 원가절감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한전은 에너지 소비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10년 전 4%에 불과했던 겨울철 난방전력 비중은 이제 30%에 육박합니다. 석유난로 대신 전기난로, 기름보일러 대신 값싼 전기보일러를 사용하는 가정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효율이 높은 1차 에너지원(유류) 대신 효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2차 에너지(전력)를 사용하면서 국가 에너지 소비 총량이 늘어나고 연료수입을 위한 외화 지출도 증가합니다. 지난해 석유 대신 전기를 사용한 데 따른 추가비용이 1조원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선 전기요금을 최소한 원가 수준에 맞추는 요금 현실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