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투자를 줄이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3년 경영 환경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36%의 기업이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지난해 말에는 투자 축소 의향을 밝힌 기업이 18%였으나, 올해는 그 비율이 두 배로 높아졌다. 세계적 불황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탓이다. 또 지난해 말 86%의 기업이 연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응답했으나, 올해는 60%의 기업이 2%대 성장을 예상했다.

○삼성 현대차 SK “보수적 투자”

글로벌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대기업들의 내년 경영 방침은 보수적인 기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투자를 늘려온 삼성 역시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착공한 화성사업장 내 시스템반도체 17라인 건설공사를 중단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건설 중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A3라인 공사를 중단하고 대신 기존 A2 공장의 남은 공간에 확장 라인(A2E)을 짓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올해 중국 3공장, 브라질 공장을 준공한 만큼 내년에는 신규 투자를 줄일 계획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9일 브라질 공장 준공식에서 “해외 생산기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올해 하이닉스 인수를 포함해 사상 최대인 19조원을 투자한 SK도 내년엔 투자를 소폭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최태원 SK 회장은 SK경영경제연구소와 핵심부서 등에서 올라오는 경제 현안 관련 보고서를 1주일에 수십 건씩 검토하며 경영진과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투자 축소뿐이 아니다. 구조조정도 가시화하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내년에 구조조정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15%의 기업이 ‘있다’고 답했다. 자산 매각, 사업 철수, 인력 감축 등이 대표적인 구조조정이다. 이미 연말을 앞두고 르노삼성 현대중공업 삼성카드 삼성화재 씨티은행 SK커뮤니케이션즈 등이 명예퇴직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연말 인사 태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황에 경제민주화, 원高까지

기업들이 투자 축소, 구조조정 등을 추진 중인 것은 경제가 나빠지고 있어서다. 전경련 조사에서 투자 축소 이유로 77%가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를 들었다. 또 60%의 기업은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외에도 걱정거리가 많다. 대선과 맞물려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 바람은 심각하다.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이 입법될 경우 기업들은 가진 현금을 지배구조 개편에 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 투자가 더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순환출자 해소 비용을 14조6000억원 정도로 최소화해 계산해도 신규 투자와 일자리 감소 등으로 국내총생산(GDP)이 2%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환율도 불안하다. 슬금슬금 오르던 원화가치가 탄력이 붙어 달러당 108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58%의 기업은 내년 환율이 1050~110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했고, 33%는 1000~1050원대를 예상했다. 손익분기 환율을 묻는 질문에 48%가 1050~1100원, 32%가 1000~1050원이라고 답한 것을 감안하면 수출해봐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달러당 1070원대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내년은 환율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좋지 못할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판단해 최대한 지출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원고 현상까지 나타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석/서욱진/윤정현/전예진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