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는 대형마트 가지 말란 말이냐"
대형 유통업체들은 15일 오전 중소상인단체와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열어 중소도시 출점 자제, 월 2회 휴무 등 자율 합의를 도출한 지 얼마 안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기존 유통법보다 한층 규제가 강화된 개정안이 지식경제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유통업체가 상당한 매출 타격과 사업계획 차질이 예상되는 합의안을 내놓은 것은 정치권에 골목상권 갈등을 법적 강제성이 아닌 업계 자율로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여야 합의로 통과된 개정안은 업계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어렵게 도출해낸 자율 합의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규제 대폭 강화

개정안은 그동안 국회에 계류된 22개 유통 규제법안들을 여야 합의로 통합한 단일 법안으로 중소상인들의 의견이 대폭 수용됐다는 분석이다. 현행 유통법보다 영업시간 제한이 훨씬 강화됐고 규제 대상도 대폭 확대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로 정할 수 있는 의무휴업일 지정 일수가 매월 ‘2일 이내’에서 ‘3일 이내’로 확대됐고, 영업제한 시간도 현행 ‘자정~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10시’로 네 시간 늘어났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에서 제외됐지만, 개정안에서는 이들도 포함시켜 똑같은 규제를 받도록 했다. 농어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규제 예외 대상으로 지정된 ‘농수산물 비중이 51% 이상’인 점포도 ‘60% 이상’ 점포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영업 규제를 받지 않던 농협 하나로마트·클럽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상당수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출점규제 조항도 새로 추가됐다. 대규모 점포 개설 시 등록 신청 30일 전에 지자체장에게 입점 사실을 알리는 사전 입점예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규모 점포가 간판을 내걸지 않은 채 영업에 들어갈 경우 나중에 사업조정신청이나 영업정지 등 분규가 발생했을 때 영업개시일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자율합의 ‘무용지물’ 될까

유통업체들은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돼 시행되면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입점 협력업체와 농어민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대형마트 A사 관계자는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맞벌이 부부, 싱글족 등이 주로 쇼핑하는 시간으로 이 시간대 매출 비중이 10%를 넘는다”며 “늦게 쇼핑하는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체들은 향후 개정안이 지경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규제 내용이 상당부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현행 유통법이 통과되기 전의 원안도 이번 개정안을 능가하는 규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논의 과정에서 수정됐다”며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소비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이날 동네상권 대표 등과 함께 발표한 기업형슈퍼마켓(SSM) 인구 10만명 이하(대형마트는 30만명 이하) 중소도시 출점 자제, 월 2회 평일 휴무 등 자율 합의방안도 일단 시행할 계획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자율 합의사항은 지켜나갈 것”이라며 “하지만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합의사항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이정호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