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소니의 ‘워크맨’은 문화 아이콘이었다. 음악은 실내에서만 듣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이 파격적인 제품은 청소년은 물론 넥타이 부대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홀로 음악을 즐기고 싶다는 자기 표현이었고 이는 곧 미래형 삶의 방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워크맨은 전자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1999년 9000억엔을 넘던 워크맨 매출도 2008년 4500억엔으로 반토막났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워크맨뿐 아니라 소니의 다른 제품도 찾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매출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12년 현재 소니는 4년 연속 적자 상태이고, 텔레비전 부문은 8년 내내 마이너스 매출에 허덕이고 있다. 한때 시대를 이끌며 승승장구했던 소니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소니는 애플과 삼성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을까.

《굿바이 소니》는 20여년간 소니를 취재한 언론인이 소니의 성공과 몰락에 관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소니를 몰락으로 이끈 결정적인 원인으로 잘못된 기업 전략을 꼽는다. 1946년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설립한 소니는 처음부터 개발과 기술을 지향하는 기업이었다.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며 독자적인 기술에 바탕을 둔 제품을 선보여왔다.

그러나 소니의 덩치가 커지면서 매번 ‘워크맨’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없게 됐다. 그러기엔 딸린 식구들이 너무 많았다. 소니 임직원들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확실히 팔리는 상품을 파는 빠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후발진입전략’.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소비에 드라이브가 걸린 시점을 가늠해 시장에 뛰어드는 방법을 택했다. 혁신과 안전의 갈림길에서 안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이 방법이 계속되면서 소니다운 상품 개발을 목표로 해왔던 연구·개발 부문의 힘이 약해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오가 노리오, 이데이 노부유키, 하워드 스트링거로 이어지는 최고경영자(CEO) 간의 암투도 소니의 몰락에 일조했다고 꼬집는다. 1995년 소니 사장으로 취임한 이데이는 전임 오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 이사제를 도입하고 감독과 집행을 분리하기 위해 소니 그룹을 독립된 25개의 회사로 나눴다. 그룹 본사는 투자은행처럼 관리와 평가만 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본사는 급속도로 관료화됐고, 각 회사들은 당장의 이익만 낸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이런 실적 평가 방식이 소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