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리는 기준은 명백하다. 식견이 있는 글은 A, 식견이 없는 글은 C다. 식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글쓰기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생각을 쥐어짜면서 괴롭게 글을 쓰느라 불행한 사람과 마음을 연주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는 행복한 사람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식견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여기 행복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한유에서 원매까지 중국 문장가 26인의 글쓰기 철학을 살펴보고자 이들의 고문을 감상하고 평론하는 행복한 작업을 펼쳤다. 1885년 조선 문인 석릉(石菱) 김창희(金昌熙)가 완성한 《회흔영(會欣穎)》, 이 책의 진가는 어디에 있을까. 한장석(1832~1894)의 《미산집(眉山集)》권9 중 ‘발회흔영(跋會欣穎)’을 읽어보자.

‘소식(蘇軾)이 대나무를 그리는 것에 대해 논하기를 “완성된 대나무를 마음속에 먼저 구상해서 붓을 놀려 곧바로 완성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놓치면 사라지고 만다”고 했다. 이는 도(道)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묘하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반드시 빨리 적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회흔영》이 지어진 까닭이다. 문장은 깨달음을 주로 하여 말이 통달하면 이치가 나타난다. 더러 오래 씹어 터득하기도 하고 더러 대번에 달려가 만나기도 한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병이 들어 기억을 잘 못해서 석릉 김상서(金尙書·김창희)를 찾아갔더니, 김상서는 “책을 읽고 잊어버리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샘물은 더럽고 오래된 것을 씻어내야 활수(活水)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한문학의 정수와 만나려면 어떤 책을 펼쳐야 할까. 일단 조선시대 성종대, 중종대, 숙종대 세 차례 출간된 《동문선(東文選)》이 기본 도서다. 조선시대 관각(館閣)의 문장에 관심이 있다면 정조대에 출간된 《문원보불(文苑)》을 보면 된다. 뚜렷한 고문(古文) 정신으로 만들어진 선집을 원할 경우 김택영의 문인 왕성순이 지은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를 보면 된다.

그런데 이들 책자는 좋은 글을 선별하기만 했을 뿐 그 글이 왜 좋은지 감상과 평론의 포인트가 친절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급 독자들에게 그런 친절함은 불필요한 사족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창희가 《회흔영》에서 제기하는 일반 독자들의 상황은 범상하지 않았다. 19세기 조선 사회에는 방방곡곡 숙사(塾師)가 양산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저 다독다작의 훈련만 일삼으며 어린 영혼의 문학적 성장을 가로막았다. “책 읽기는 식견을 구하려고 하는 건데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읽고만 있으니 아니 읽은 것만 못하고, 글쓰기는 식견을 드러내려 하는 건데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쓰고만 있으니 아니 쓴 것만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문을 추구한 문장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김창희는 위희(魏禧·1624~1680)의 글을 읽고 말한다. 한유는 고문(古文)을 창시한 사람인데, 그는 고문을 짓는 핵심적인 방법을 진부한 말을 제거하는 데서 구했다. 진부한 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식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남들과 부화뇌동하는 속된 식견을 먼저 없애지 않는다면 고문이 나오지 못한다. 사실 글을 짓는 방도는 식견을 단련함에 있다. 이 명제는 송명(宋明) 이래 누구도 말한 사람이 없고 오직 청초(淸初) 삼대 문장가의 하나인 위희만이 말했는데 이야말로 한유의 고문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다.

《회흔영》에는 이 밖에도 글쓰기 철학에 관한 유익한 단상들이 많다. 김창희는 평소 확고한 문학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고, ‘속(俗)’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 속에서 아무런 식견 없이 옛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낡은 관습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도 식견을 기르는 책 읽기와 글쓰기가 활성화되면 좋겠다.

노관범 <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