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불빛으로 일하는 이웃 노인을 비춰주는 운전자의 배려를 재치있게 그린 엄대용 감독의 ‘독서의 계절’이 한국경제신문의 10월 29초 먼슬리영화제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청소년부 대상은 자동차 안에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을 담은 장재혁 감독의 ‘대화’에 돌아갔다.

엄대용 감독은 “독서를 통해 티를 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알게 되고 실천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함께 작업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장재혁 감독은 “아버지와 둘이서 하루 동안 찍었다”며 “1회 때부터 여러 차례 29초영화제에 도전한 끝에 처음으로 결실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대학로 씨어터 카페에서 열린 29초 먼슬리영화제 시상식은 이들을 비롯해 최우수·우수·특별상 등 수상자 18명, 출연자, 가족, 팬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현대자동차가 총상금 2000만원을 걸고 ‘자동차와 함께하는 빛나는 순간’을 주제로 후원한 이번 축제에는 10월 한 달간 290편이 출품됐고 예심을 거친 181편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출품자들은 초등학생부터 해외이민자까지 다양했고 작품 수준도 높아 현대차 로고만 넣으면 광고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최우수상은 데이트 약속에 늦더라도 자동차로 노인의 리어카를 끌어주는 모습을 담은 이훈국 감독의 ‘사선에서’, 차 안에서 나만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을 임팩트있게 묘사한 정다훈 감독의 ‘나만의 공간’(이상 일반부), 차 안에 생일 선물을 놓아두는 이벤트로 아빠를 감동시킨 딸의 이야기를 그린 조설하 감독의 ‘태워줄까’, 차 청소를 하다 동전을 잔뜩 줍는 판타지를 그린 윤성혁 감독의 ‘트윙클’(이상 청소년부)이 받았다.

우수상은 일반부와 청소년부에 3편씩 주어졌다. 일반부에서는 떠나간 여자친구와 차 안에서 보냈던 추억을 묘사한 방재호 감독의 ‘그대와 함께 춤을’, 의인화한 자동차와 제작자 간의 인연을 그린 서창성 감독의 ‘너와 나의 이야기’, 20여년 전 첫 수출한 현대차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을 알기 시작했던 때를 중년 여인이 회고하는 내용의 유진 김 감독의 ‘처음’ 등이다.

청소년부에서는 엄마와 아빠, 자동차와 함께한 여행을 아이의 그림일기로 표현한 김지은 감독의 ‘크레용’,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로 일탈하면서 교감의 계기를 마련하는 백현지 감독의 ‘당신의 일탈’, 등굣길에 늦지 않게 데려다줬던 우리집 자동차야말로 최고의 명차임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표현한 나현경 감독의 ‘우리집 자동차는’ 등이다.

특별상은 자동차는 우리들의 더러운 순간까지도 함께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서홍찬 감독의 ‘당신의 더러운 모습 기억하세요?’ 등 6편에 수여됐다. ‘처음’의 캐나다 교민 유진 김 감독은 밴쿠버에서, ‘당신의 더러운 모습 기억하세요?’의 호주 교민 서홍찬 감독은 시드니에서 수상 소감을 동영상으로 각각 보내왔다. 이들은 내년 29초영화제의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이희주 한국경제신문 이사는 “29초에 불과하지만 여운은 장편영화에 뒤지지 않을 만큼 긴 작품들을 발굴하는 게 29초영화제의 컨셉트”라며 “여러분들이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