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프랑스 경제를 이렇게 묘사했다. 앞서 미국 경제연구단체 콘퍼런스보드와 국제통화기금(IMF)도 “프랑스 경제는 앞으로 20년간 0%대 성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의 위기를 경고하는 빨간불이 잇따라 켜지고 있는 것이다.

위기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프랑스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90% 수준이다. 실업률은 10%를 넘었다. 젊은 층에선 4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다. 경상수지는 2006년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프랑스 대표 자동차업체인 푸조와 르노는 자국 내 일부 공장의 문을 닫았다. 에어프랑스(항공), 사노피(제약) 등 대기업들도 해고 러시에 뛰어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에 재앙이 임박했다”고 진단했다.

◆세금 펑펑 쓰면서 기업은 억눌러

프랑스 경제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지나친 정부 지출이다. GDP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7%다. 유럽 내 경쟁국인 독일보다 10%포인트 이상,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보다도 5%포인트나 높다.

정부는 많은 돈을 쓰면서 막상 돈을 벌어오는 기업은 억누르고 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세금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임금에서 사회보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의 2배 수준이다. 임금 수준도 유럽 평균보다 22%나 높다. 이코노미스트는 “50명 이상을 고용하면 중소기업 혜택을 주지 않는 법률 때문에 많은 기업이 49명만 채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의 자크 아쉔브로이치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환경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0년간 CAC40(파리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40개 우량 기업) 기업의 해외 채용은 5% 늘었지만 자국 내 채용은 4% 줄었다. 기업들이 규제와 세금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고 있다는 얘기다.

◆갈수록 과거 명성을 잃는 프랑스

경제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가 경쟁력을 갖고 있던 금융,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경쟁국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지난 9월 영국계 컨설팅그룹 젠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에서 파리는 29위를 기록했다. 런던(1위), 뉴욕(2위)은 물론 상하이(19위), 두바이(22위) 등 신흥 도시에도 밀렸다.

미술품 거래 시장은 프랑스의 높은 세금을 피해 런던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도시로 옮겨 가고 있다. 파리가 자랑하는 패션과 디자인 분야도 이탈리아 밀라노 같은 도시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젊은이들은 예전엔 파리 여행을 선호했지만 이제 바르셀로나, 프라하 등의 도시를 선호한다”며 “파리를 가격만 비싸고 서비스가 나쁜 도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개혁 추진은 지지부진해

경제 위기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지지율이 50% 밑으로 급락하자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경제개혁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추진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달 루이 갈루아 전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CEO가 정부에 제출한 ‘근로자 복지비 감축’ 등의 개혁안도 상당 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요 개혁 과제인 노동시장 유연화도 집권 사회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 관료 중 국제 경제에 능통한 전문가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올랑드 대통령 등 대다수 관료가 해외 경험이 없는 그랑제콜(프랑스 고유의 엘리트 고등교육기관) 출신”이라며 “시장경제나 금융에 막연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당시의 약속과 지지세력의 반대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안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단기간 내 충격요법을 쓰지 않으면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윤선/김동현/고은이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