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대기업·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회수를 자제하라고 은행권에 강하게 주문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의 실적과 자금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살릴 수 있는 기업’엔 신규 자금을 지원할 것도 요구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기연 금융감독원 은행·비은행 담당 부원장보는 최근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과 회의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이 부원장보는 회의에서 “은행들이 채권 회수 위주의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행태가 빚어지고 있다”며 “이는 워크아웃 취지에 맞지 않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채권은행들이 올해 실시한 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대상인 ‘C등급’으로 분류된 기업에 대해 채권 회수보다는 신규 자금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금감원은 C등급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은행이 책임감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기업과 채권단이 손실을 분담하는 게 워크아웃 제도의 목적인데도, 은행들이 지나치게 채권 회수에 몰두해 구조조정이 파행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이 부원장보는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면 해당 업체가 마련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평가해 신규 자금 공급, 출자전환 등을 통해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은행의 역할”이라며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당 기업들이 갑작스럽게 법정관리로 가는 일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아울러 여신특별관리 업종으로 지정돼 있는 조선 건설 부동산 관련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 자금 지원이 어렵다면 기존 자금 회수만이라도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은행권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이 연말까지 부실채권 비율을 1.3%로 낮추라고 은행권에 지시한 상황에서 추가로 자금을 지원했다가는 목표치 달성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9월 말 기준 은행권 부실채권 비율은 1.56%에 이른다.

이날 회의에선 내년엔 기업들의 실적과 자금사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채권단은 매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 한 차례씩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구조조정 대상(C·D등급)을 분류해왔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평상시처럼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기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미 내부적으로 ‘기업 부실 확대 대응 방안’을 마련해 선제적인 신용위험평가와 상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 부실이 확대될 조짐에 대비해 기업 구조조정, 중소기업 자금 지원,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