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에 있는 국내 종자 1위 기업 농우바이오의 육종연구소. 낡은 작업복에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직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평범한 농부처럼 보이는 이들은 채소 분야에서만 10년 넘게 일한 배추박사, 무박사들. 150여명의 인력 중 연구원만 54명에 달하고 이 중 박사급 연구원도 12명이나 된다. 이곳에서 최근 개발한 대추형 토마토는 과일껍질이 잇몸에 끼지 않아 기존 방울 토마토 대체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씨앗 1㎏의 가격은 6000만원. 같은 무게의 금값과 비슷하다.

농수산 분야의 반도체로 불리는 종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기관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동부팜한농이 몬산토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사라졌던 국내 종자 기업 간 경쟁이 다시 불붙은 데다 정부도 내년 270억원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5000억원을 투자하는 ‘골든씨드’ 프로젝트에 나서면서 침체됐던 종자 R&D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석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생명복지조정과장은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농림수산식품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의 유사 중복 R&D 예산 200억원을 효율화시켜 골든씨드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파프리카, 실뱀장어 육종 성과

종자 개발 성과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부터 대다수 작물이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협약 대상에 들어간 것에 대비해 종자 R&D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온 덕분이다. UPOV 협약에 가입하면 관련 품종을 사용할 때마다 종자에 대한 로열티를 내야 한다.

농우바이오는 최근 2000년부터 착수한 파프리카 종자 국산화에 성공, 내년부터 2개 품종을 국내외 판매 할 계획이다. 파프리카는 씨앗 한 알에 1300원, ㎏당 무려 1억2000만원에 달하는 황금종자. 김용희 농우바이오 사장은 “올해 1000만달러 규모인 종자 수출액을 내년에는 2000만달러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산시 기장읍 해변가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연구단 실험실. 푸른 형광빛 조명 아래 설치된 각 수조에서는 부화한 지 60일, 120일, 240일이 지난 렙토세팔루스(뱀장어 유생)들이 자라고 있다. 연구단은 지난달 수정란에서 부화한 3㎜의 유생을 256일 만에 양식이 가능한 실뱀장어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뱀장어를 직접 양식할 수 있는 길을 처음 연 것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뱀장어는 수산 분야에서 가격이 가장 비싼 종자 중 하나다. 어린 장어인 실뱀장어 가격은 ㎏당 3500만원. 손재학 국립수산과학원장은 “유생을 실뱀장어로 키우는 기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하는 후속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2의 우장춘 육성해야

경남 김해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시설원예시험장은 과육이 탄탄한 고경도 딸기품종인 ‘대왕’을 개발, 국산 딸기 품종 보급률을 2005년 9.2%에서 71.7%로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육종 발전의 전기를 제공한 우장춘 박사가 한국에 들어와 초대원장을 맡은 곳이기도 하다. 세계적 육종학자인 우 박사는 우리 기후에 맞는 배추와 무 품종을 개발했고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했던 강원도 감자를 개량해 세계 최고 감자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종자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제2의 우장춘 박사’를 길러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김도연 국과위 위원장은 “국내 농산물의 품질 향상은 물론 종자 강국 실현을 위해 관련 투자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여주=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