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영업일수와 시간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면 납품 농어민과 중소업체, 영세 입점업체 등 ‘사회적 약자’가 연간 5조3000억여원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영업시간 단축에 따라 고용인원이 2만명 이상 줄어드는 데다 규제 혜택도 재래시장이 아닌 대형슈퍼와 온라인쇼핑에 집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와 함께 대형마트 7개, 기업형슈퍼마켓(SSM) 5개를 대상으로 규제로 인한 피해 규모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추산됐다고 20일 발표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지난 16일 대형마트의 월 의무휴업 3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영업제한 등을 핵심으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을 통과시켰다.

전경련과 체인스토어협회가 추산한 예상 피해 규모는 △납품 농어민 1조6545억원 △중소기업 3조1329억원 △영세 입점업체 5496억원 등 총 5조3370억원이다. 앞서 체인스토어협회는 규제 강화가 이뤄지면 전국 대형마트와 SSM의 연간 매출이 총 7조8480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전경련은 상추 깻잎 시금치 쑥갓 등 엽채류 등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 상품은 대형마트들이 발주량을 줄여 납품물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대형마트에 상추류를 납품하는 A 영농조합법인의 한 달 매출이 대형마트 규제 이전 30억원에서 규제 시행 이후 19억원으로 36.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과 체인스토어협회는 고용 감소로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았다. 대형마트의 일용직, 파트타이머(정해진 날과 시간에만 근무하는 비정규직) 등 자체 고용감소 외에 마트 주변 지역주민을 주로 활용하는 영세 입점업체의 고용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협회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발효되면 고용감소 규모가 2만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규제의 혜택이 재래시장 아닌 대형슈퍼와 온라인쇼핑에 돌아간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대형마트 규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온라인쇼핑 등 무점포 판매와 편의점의 7월 매출 증가율이 각각 12.5%, 20.7%로 두 자릿수를 나타냈다.

한선옥 전경련 산업정책팀장은 “재래시장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규제 강화가 오히려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며 “규제의 적정성에 대해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