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고급빌라가 반값에 무더기로 공매에 나왔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 속에 수요가 한정된 고급빌라가 외면받는 것이다.

25일 한국토지신탁에 따르면 서울 도곡동 ‘신영 지웰카운티’ 16가구가 작년부터 여덟 차례 공매에 부쳐졌지만 모두 유찰되고 현재 아홉 번째 공매가 진행 중이다.

감정가 19억원을 웃도는 214㎡(공급면적)는 잇단 입찰 불발로 9억원대(공매 예정가)까지 떨어졌다. 2010년 분양가격이 20억원을 웃돌았던 고급 빌라가 반값에 못 미치는 가격에도 팔리지 않고 있다.

이 단지는 한국토지신탁이 토지를 위탁받은 뒤 신영그린시스에 시공을 맡겨 7층짜리 2개 동에 37가구 규모로 지었다. 학군이 좋은 데다 매봉산공원 양재천 등이 가까워 주거환경도 뛰어나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당수 가구가 미분양되자 자금을 투자한 신한은행이 공매에 부쳤다.

공매가 거듭 유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수요층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급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관리비와 공과금 부담이 커 고소득층 외에는 매입하기 어렵다. 보통 거액자산가 연예인 전문직종사자 등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매입한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공짜로 들어가 살라고 해도 100만원을 웃도는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며 “최근 들어 부유층도 씀씀이를 줄이고 있어 고급빌라 거래가 뜸하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에 비해 전용률이 크게 낮은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가구 수는 적은데 운동시설 영화관 등 공용 시설을 넓게 조성하다 보니 거주자가 직접 사용하는 공간이 넓지 않다. 공급면적은 214㎡지만 전용면적은 107㎡에 불과하다. 분양마케팅업체인 미드미디앤씨의 이월무 사장은 “고급 빌라는 인맥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분양되는 물건이어서 공매로는 주인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가격이 반 이하로 떨어진 물건은 투자대상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