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양자(兩者)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치우쳤던 시계추가 다자(多者)간 무역자유화로 돌아가는 추세입니다. 한·중·일 3국의 경제블록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겁니다.”

올 들어 동시다발적 양자·다자간 FTA협상으로 유난히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26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최근 다자간 FTA가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역내 경제권 통합이 통상 부문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자보다 다자간 협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한국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등 16개국과 추진 중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트렌드에 맞는 선택이다.”

▷RCEP와 한·중·일 FTA 등 역내 경제통합 논의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작년 이후 한·중·일 FTA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아세안이 아시아 통합의 주도권을 동아시아 3국에 뺏길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 아세안 주도로 추진되는 RCEP가 속도를 내는 이유다. 서로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중국과 일본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역내 경제권 통합 추진과 맞물려 있다.”

▷전략적으로 다자간 FTA 추진으로의 전환이라고 봐도 되나.

“역내 경제통합은 국제적인 추세다. RCEP와 같은 아시아 경제통합체는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함께 세계 3대 경제블록을 구성할 것이다. 한국은 2004년 칠레를 처음으로 그동안 미국, EU 등 8개 지역과 양자 간 FTA를 발효했다. 하지만 각 FTA에서 규정하는 원산지 규정과 품목별 관세율이 달라 기업들이 혼란을 겪으면서 FTA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이다. 통상학자들이 지적하는 이른바 ‘스파게티 볼(spaghetti bowl)’ 현상이다. 다자간 FTA는 이런 부작용을 경감시켜주는 효과를 낼 것이다.”

▷한·중·일 FTA가 맺어지면 한·중 FTA는 어떻게 되나.

“모든 FTA에는 기존 무역협정과의 관계 조항이 들어간다. 한·중이든, 한·중·일이든 기업은 자신에 가장 유리한 협정을 골라 혜택을 받으면 된다.”

▷정작 소비자들은 FTA로 인한 가격 인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 해 수입하는 5000여억달러의 물량 중 소비재 비중은 10%가 채 안 된다. 수출도 중요하지만 수입 소비재도 당당하게 들여와 국내 제품과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국내 유통단계도 FTA 가격 인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소비자단체 등 민간 부문의 시장가격 감시 역할이 중요하다.”

▷농업계는 여전히 FTA 피해 대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하는데.

“2008년부터 2017까지 10년간 농어축산업 등 피해 산업에 지원되는 금액만 54조원이다. 충분한 지원은 해주되 이런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단순 소득보전이 아닌 연구·개발(R&D) 지원 같은 근본적인 체질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반덤핑, 상계관세 등 전통적인 보호무역 장치 외에도 최근 애플-삼성, 듀폰-코오롱 분쟁 사례에서 보듯 지식재산권 등 새로운 유형의 견제 장치가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담합 등 무역분쟁의 빌미를 줄 수 있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한·미 FTA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은 언제 하나.

“지난 3월 전문가 회의체를 구성하고 재협상 방향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의견수렴 결과가 나오면 국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할 방침이다. 양국은 이미 재협상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만큼 우리가 어떤 걸 요구할지가 관건이다. 현실적으로 협상 시기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2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설도 나오고 있다.

“통상교섭본부는 1998년 출범 이후 14년간 협상과 관련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많이 축적해놓았다. 조직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 대책은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현 통상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