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을 두 해 앞두고 난생 처음 연애편지를 썼다. 다 쓴 연애편지를 다시 읽어보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나이에 그렇게 보들보들한 단어들이 내 속 어디에 잠재해 있었나 싶어서.”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씨(68)가 에세이 《엄마를 졸업하다》를 펴냈다. 첫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와 함께 열네 살 연하 남편 토마스를 따라 간 독일에서의 생활을 담은 첫 에세이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를 낸 지 20년. 그동안 ‘안간힘을 쓰며 달려온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한 뒤 ‘여자 김영희’로서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는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장성한 다섯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토마스와의 결별을 담담히 고백한다. “싱글벙글 늘 즐거운 대학교 2학년생 큰 소년은 남편이란 명패를 달고 서 있을 뿐 아버지라는 자리에 설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김씨는 칠십 문턱에서야 자신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고 “나, 참 아름답다”고 외친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모험을 서슴지 않고, 재즈와 클래식만이 아니라 간드러지는 유행가 가락에도 푹 빠져 산다. 새로운 사랑도 시작했다. 난생 처음 연애편지를 쓰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찢어버리고, 다시 점잖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는 이내 후회했다며 수줍어한다.

이제야 여자로, 진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그는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외친다.

“나는 지금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호기심 가득한 싹을 틔우며 다시 봄 속에 서 있습니다. 온 세상이 수런거리며 각기 다른 모양으로 싹을 틔웁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판에 서 있으면 어디선가 왕자님도 달려올 것 같습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