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 판사의 판결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노예제도에 관한 것도, 에이브러햄 링컨에 관한 것도, 또는 부시 대 고어에 관한 것도 아니다. 답은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포터 스튜어트 판사의 판결이다. 그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고 했다.

자기 회사에 딱 맞는 조직 문화를 ‘정의’하는 것은 포르노그래피를 정의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조직 문화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구성원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게 할 수 없다.

최근 들어 대내외적으로 경영 여건이 안 좋아지다 보니 자기 회사만의 강력한 조직 문화를 구축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차별화된 문화’라는 것이 대개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화합을 위해 소통을 강화하겠다든지, 긍정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신바람 나는 기업 문화를 구축하겠다든지, 창조 경영을 추구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 문화를 정착하겠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소통을 외쳐대고,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만 만든다고 해서 회사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조직 문화를 고민하면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람직한 조직 문화는 기업이 성과를 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 문화 구축을 고민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냐는 것이다.

‘펀(fun)한 조직문화’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례는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저가 항공사로는 유일하게 세계 10위 안에 들어 있는 회사다. 아무리 ‘싼 맛’에 타는 것이 저가 항공이라지만 고객 만족을 등한시하다보면 “사람을 짐짝 취급한다”는 불만을 듣기 쉽다. 그렇다고 고객 만족을 높여보겠다고 기내식을 제공하고, 좌석마다 읽을거리라도 놔주었다가는 비용이 치솟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저가’ 전략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데, 과연 돈을 안 쓰면서도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가 비용 없이 고객에게 가치를 주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사우스웨스트는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냈다. 고객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낮은 원가를 유지하기 위해 사우스웨스트항공권에는 좌석 번호가 찍혀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에 오른 손님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하지만 일단 좌석에 앉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익살맞은 표정을 한 승무원들이 다가오더니 옆 좌석에 앉은 사람하고 자기 소개를 하란다.

생일인 승객에게는 고깔 모자를 쓰고 와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흥이 나면 자기들끼리 만담을 하다가 승객을 불러내서 노래를 시키기도 한다. 비행 시간 내내 승무원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처음 비행기에 올랐을 때 가졌던 어색하고 서먹한 느낌은 어느덧 사라지고, ‘벌써 내려야 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추가 비용 없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우스웨스트는 승객을 즐겁게 해주려면 먼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펀(fun) 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들 사이의 인간 관계를 각별히 챙겨주는 등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분위기도 좋아지는 법. 채용 단계에서부터 끼가 있고 잘 놀게 보이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끼를 펼치며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갖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행여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로 흐를까봐 허브 켈러허 회장이 직접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고객에게 ‘재미’라는 가치를 제공한다는 전략 하에 한 방향으로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을 해 온 결과, 성과로 이어지는 ‘펀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전자의 조직문화는 최근 ‘관리’ 중심에서 ‘창조’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제품을 가장 먼저 출시해 시장을 선도해나가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관리’보다는 ‘창조’ 역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직 문화는 조직원들이 공유하는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이다. 다시 말해 직원들이 일하는 습관이고, 그들의 행동을 지시하는 분위기다.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은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적용된다. 혹시라도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따라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경영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창조니 소통이니 하는 문화가 과연 우리 회사의 장기적 전략과 부합하는지 말이다.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